지난 시절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안일하다. 흘러간 것이니 그냥 자연스레 잊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970년대 인기를 끌었던 가수 여운은 과거는 흘러갔다라는 제목의 노래를 불렀다. ‘지금의 내 심정을, 전해보련만,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 등.’ 하지만 요즘 뉴스에 등장하는 사건을 보면 과거는 흘러간 것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현재처럼 과거가 아주 펄펄 살아있다. 그리고 그 맹위를 떨치는 과거로 인해서, 특히 악행을 저지른 누군가는 된통 뉘우치고 벌을 받는다.

대세 밴드라고 하는 잔나비의 멤버가 학교폭력 전력이 드러나면서 팀을 자진 탈퇴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고교시절 이야기니까 어림잡아 8~9년 일이다. 아마도 당사자는 저 옛날 일로 치부하고 지금만 잘하면 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근래 미디어를 장식한 갑질’, ‘미투’, ‘빚투’, 그리고 학폭사건은 모두 당장의 사건으로 문제가 된 게 아니라 지나간 과거와 오래전 일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지난해 순식간에 10개에 달하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광고에서도 가장 핫한 인물이었던 방송인 김생민은 10년 전 저지른 방송스태프 성추행에 발목이 잡혔다. 마치 김생민이 없으면 방송이 안 될 것 같은 기세였지만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이후, 지금 그의 이름은 거의 잊혀져버렸다. 현재가 과거에 의해 무참히 파괴된 것이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던 시문학의 금자탑 고은 선생도 미투에 의해 철저히 존재감이 땅으로 떨어졌다. 수원시에 건립 예정이던 고은문학관 계획도 철퇴를 맞았다. 래퍼 마이크로닷 역시 과거 거액을 빌려 해외로 도주한 아버지의 과거사에 잘못 대응해 방송계에서 축출되었다. 이런 일을 목격하면서 과거는 흘러갔다고 말할 사람 그 누구인가.

  갈수록 과거가 중요해지고 무서워지고 있다. 오래 전에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전에는 묻혔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SNS와 함께 낱낱이 과거의 행적이 밝혀지면서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잘 빚어낸 현실이 결코 과거에 대한 면죄부로 통하는 세상이 아니다. 이쯤 되면 과거는 과거가 아니며, 현재보다 더 무서운 시제일 수도 있다.

  사실 과거를 가장 잘 마케팅해 재미를 보는 분야가 음악이다. 실험과 도전으로 새 것만을 찾는 게 아니라, 과거의 작품을 오늘의 터치로 끌어오는 리메이크, 복고 그리고 빈티지 흐름은 모두 과거에 대한 숭배에서 비롯한다. 그게 아니면 노스탤지어파()라고 할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나 아델(Adele)이 그래미상을 석권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최근에 자주 동원되는 수식은 뉴트로역시 과거를 의미하는 레트로에 뉴(new)를 붙인 것이니 마찬가지 개념이다. 역사적으로 음악 산업에서 빼어난 기획자 가운데에는 새 흐름을 주도해가는 사람도 있지만 흘러간 것을 예의주시해 산업적 잠재력을 찾아내는 과거지향인물도 많다. 후자의 중심사고는 바로 온고지신이다.

  얼마 전 <롤링스톤>지는 레전드의 전기영화나 다큐멘터리가 음악계의 다음 수익모델인가?’라는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실제로 퀸의 프레디 머큐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막 개봉한 엘튼 존의 <로켓맨> 등을 비롯해 역사를 수놓은 전설적 인물들에 대한 영화제작이 현재 봇물을 이루고 있다. 영화에서도 과거시제의 힘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 셈이다.

  시인 바이런은 최량(最良)의 예언자는 과거라고 했다. 사회운동가 P 헨리도 한 연설에서 나는 과거에 의하지 않고 장래를 판단하는 길을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과거가 결코 종결된 세계가 아닌 현실의 세계라는 점에서 되새겨야 할 말들이다.

 

임진모 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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