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A는 학교폭력 가해자다. 1학년 때부터 2년간 동급생 B를 괴롭혔다. 매주 상납금을 2만 원씩 요구했고, 금품을 갈취했으며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로 불러 폭행했다. A의 범죄 행각은 결국 학교 당국에 알려진다. 학교는 은밀하고 신속하게 사건을 덮는다. “학교 위신을 고려해복잡하고가해자도 반성하고 있다.” 결론은 강제 화해에 네가 이해해라. 드라마든 현실이든 쉽게 목격할 수 있는 학폭 사건의 전모다.

  학교에서 학폭 사건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처리한다. 학부모위원, 교사위원, 일부 전문가가 학폭위를 구성한다. 과반수는 학부모다. 학폭위는 사건이 접수되면 우선 학폭인지 아닌지부터 판단한다. 이후 가해자와 피해자에 필요한 조치를 한다.

  하지만 일부 교사들은 학폭위를 여는 것 자체를 꺼린다. 업무 부담이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관련 법상 학폭이 신고되면 무조건 학폭위를 개의해야 하지만, 사건은 종종 제도 밖에서 조용히 처리된다. 애써 용기 내 교사에 내민 손길은 네가 이해해라는 말에 뿌리쳐진다. 행정편의주의는 이렇게 학생의 아픔을 외면한다. 결국, 피해 학생들은 스스로 증거를 수집해 교사 대신 수사기관을 찾는다. 교육이 채우던 자리는 법과 엄정주의가 메운다. 교권만큼이나 추락하는 건 학생의 신뢰다.

  물론 교사들의 업무 부담은 현실적인 문제다. 학생들을 돕고 싶어도 업무 부담 때문에 제대로 조사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교사들도 있다. 학부모위원이 다수인 학폭위 구조도 문제다. 부모 마음을 대변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전문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이에 교사 다수는 학폭위를 교육청(교육지원청)으로 이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사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전문가 비율을 늘려 사건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을 고려했을 때도 적절한 해법이다.

  학교는 닫힌 사회다. 교사-학생 사이에서 작용하는 권력관계는 학교를 더욱 폐쇄적으로 만든다. 도움을 요청하는 손길을 교사가 가로막을 때, 아이들은 어린 몸과 마음을 믿고 맡길 곳이 없다. 동아줄이 될 줄 알았던 학폭위는 닫힌 사회에서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피해 학생들은 밖에서 도움받길 원한다. 어른은 이를 들을 의무가 있다.


김태훈 기자 foxtrot@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