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대 길병원 권역 응급의료센터는 우리나라 최초로 닥터헬기가 배치된 곳이다. 병원 1층 닥터헬기 운항통제실은 늘 고요하고 긴장감이 감돈다. 한쪽 벽을 차치하고 있는 칠판엔 5월 닥터헬기 출동 현황이 가득 기록돼있다. 닥터헬기가 도입된 2011년부터 현재까지, 헬기 안에서 환자의 생명을 지키고 있는 조진성 응급실장을 만났다.

조진성 응급실장은 모든 국민은 응급상황에서 골든타임 내에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진성 응급실장은 '모든 국민은 응급상황에서 골든타임 내에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8년 동안 닥터헬기로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닥터헬기가 처음 도입됐을 때부터 헬기를 탔습니다. 그동안 출동 건수를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대략 200~300건 정도 될 거예요. 닥터헬기 내에서는 중소병원 응급실 수준의 진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검사와 응급처치가 이뤄지고, 헬기 거점 병원에 도착하면 곧바로 수술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거죠. 신속하고 전문적인 처치를 위해 의료진들은 5회에 걸쳐 헬기 탑승 실전 훈련을 받습니다.

  길병원은 서해 권역 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어 닥터헬기 또한 서해의 작은 섬들까지 출동하고 있습니다. 육지보다 섬으로 출동한 경우가 훨씬 많았어요. 병원에서 200km 떨어진 백령도까지 갈 때도 종종 있고요. 육지로 들어가는 배가 하루에 두세 번 정도밖에 운행하지 않으니 섬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땐 헬기 이송이 간절합니다. 닥터헬기는 빨리 환자를 이송하는 것뿐만 아니라 취약지역의 응급의료체계를 개선하려는 목적도 있거든요.”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2012년경 닥터헬기에 태운 100번째 환자였어요. 4살 여아였는데 강화도 펜션에서 놀다가 수영장에 빠졌어요. 심정지가 발생했지만, 다행히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해 잠깐 혈액순환이 돌아왔습니다. 이후 인근 병원에 이송됐는데 거기선 저체온 치료를 할 수 없어 저희 의료진이 헬기를 타고 출동했어요. 도착했을 땐 아이가 의식이 여전히 없고 호흡을 거의 하지 못했어요. 그 자리에서 바로 기관 내 삽관을 하고 앰부백(수동 인공호흡기)을 짜주면서 산소를 공급했죠. 이후 길병원에 이송해 나흘 동안 저체온 치료를 했고요. 다행히 6일 만에 완전히 의식을 회복해 퇴원했습니다.

  사실 심정지가 발생하고 의식이 완전히 돌아와 회복할 확률은 5%입니다. 그 아이는 5%에 해당한 거예요. 행운이었죠.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빠르게 진행하고, 닥터헬기에서 응급처치가 적절히 이뤄지고, 이송 후 저체온 치료를 하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덕분이었습니다. 만약 이 중 한 단계라도 미흡했다면 완전한 회복은 장담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인계점 문제로 어려운 점이 많을 것 같다

  “닥터헬기 요청 전화가 걸려 와도 인계점이 없는 지역이면 거의 출동하지 못해요. 백령도 등 섬은 한 곳당 착륙장소가 하나씩 지정돼 있어 바로 출동할 수 있지만, 아주 작은 섬들은 면적이 좁아 착륙지점을 선정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백령도 인근의 소청도나 대청도 같은 곳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환자가 배를 타고 인계점이 있는 백령도까지 가야 하죠. 지리상 어쩔 수 없는 문제지만, 환자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작은 섬이 아닌데도 인계점이 없어 착륙하지 못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양평이나 철원 등 경기 북부 지역도 인계점이 없어서 출동을 기각한 사례가 꽤 있습니다.

  인계점 관리가 제대로 안 돼 난처했던 경험도 있어요. 특히 취약지역은 인계점을 관리해줄 인력도 부족합니다. 농어촌 지역에선 헬기 착륙장소에 생선 잡는데 쓰는 어구나 고추, 곡식 등을 널어놓기도 해요. 그런 장애물들이 있으면 출동을 하더라도 착륙하지 못해 난감하죠.”

 

  -인근 주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초창기엔 시청이나 병원으로 소음 민원이 엄청 많았어요. 특히 길병원은 인근에 상가나 주택들이 밀집된 곳이다 보니 매일 3~4건 이상은 꼬박꼬박 들어온 것 같습니다. 헬기가 환자를 싣고 병원 옥상에 착륙하는데, 한 번 내렸다 하면 바로 시끄럽다며 민원 전화가 걸려왔어요. 병원으로 찾아와 저희에게 따지는 분들도 계셨죠. 그런데 올해엔 민원이 들어왔다는 얘기는 한 번도 못 들어봤네요. 닥터헬기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조금씩 향상되고 있는데 정말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닥터헬기의 필요성에 공감해주시고,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닥터헬기를 도입한 이후 응급의료체계가 어떻게 바뀌었나

  “먼저 응급의료체계는 병원 전 단계와 병원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병원 전 단계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구급대원이 현장으로 출동해 처치하고, 이송병원을 결정하는 과정입니다. 그 이후 응급실에서 진료하고, 입원 및 수술하는 모든 단계를 병원 단계라고 칭해요. 닥터헬기는 병원 전 단계에 해당합니다. 닥터헬기 도입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의사는 병원에서만 근무했어요. 병원 전 단계에서 전문의가 개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죠. 물론 병원 전 단계에서 일부 의사들은 구급대원들이 현장에서 적절하게 환자 분류를 하고 처치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평가하는 간접 의료지도 행위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간접적인 참여일 뿐이고 현장에서 직접 처치하는 사례는 드물었어요.

  닥터헬기가 도입된 후부턴 의료진들이 병원 전 단계에서도 직접적인 의료 행위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사고 현장을 두 눈으로 확인하거나, 1차적으로 이송된 병원으로 출동해 환자의 상태를 더 잘 이해하게 됐어요.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는 구급대원들과도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고요.”

 

  -닥터헬기와 관련해 개선돼야할 제도가 있다면

  “현재 닥터헬기는 구급대원의 요청으로 사고 현장에 바로 출동하지만, 구급차가 먼저 환자를 인근 병원으로 이송하고, 그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한 중증 응급환자라고 판단한 후에야 닥터헬기가 해당 병원으로 출동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닥터헬기가 출동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그땐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된 상황입니다. 생사를 오가는 순간에 이런 응급의료시스템은 독이 될 뿐이죠.

  중환자가 발생했을 땐 구급차와 닥터헬기를 동시에 요청하는 체계가 필요합니다. 현장에서 신고를 받았다면 환자의 상태와 상관없이 중증 외상이라고 판단할 기준이 마련돼 있긴 해요. 이를테면 50km 이상의 속도로 달리던 차량 혹은 오토바이의 충돌사고가 발생하거나 3층 이상의 높이에서 추락하면, 환자의 의식 상태나 출혈 정도를 막론하고 중증 환자로 분류하는 거예요.

  이런 기준을 마련해놨다면 제대로 활용해야죠. 119 상황실에서 그런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구급차만 먼저 요청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할 게 아니라, 닥터헬기도 동시에 불러야 합니다. 닥터헬기가 이륙할 때쯤이면 구급차가 이미 환자에게 도착했을 거예요. 구급대원이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고 중환자라고 판단되면 헬기와 교신해 현장의 상황을 보고해야 합니다. 그럼 닥터헬기에 탑승한 의료진들은 환자의 상태를 미리 파악하고 사고 현장으로 출동할 수 있어요. 이후 헬기 거점 병원으로 빠르게 이송할 수 있으니,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는 거죠. 물론 이렇게 되면 닥터헬기 팀은 더 많이 출동해 몸이 힘들겠지만,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여러 기관 간의 협업 체계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정한솔 기자 del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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