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사용하는 언어는 한국어다. 그리고 또 하나, 한국의 농인(聾人, 청각장애인을 달리 이르는 말)과 언어장애인 등이 일상적,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있다. 바로 이 아닌 동작을 통해 소통을 돕는 한국수어다. 한국수어는 30만 명에 이르는 사용자들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쓰인다. 63농아인의 날을 맞이해 또 하나의 언어인 수어의 특징과 그 전망을 살펴봤다.

 

  수어는 언어

  수어는 수화라고도 불리며, 그 공식적인 용어에 대한 논의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실시된 한국표준수화 규범 제정사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화는 손을 사용한 대화라는 뜻으로, 과거부터 널리 사용해온 용어라는 점에서 초기 지지를 받았으나 한국어, 영어, 일본어처럼 사람의 감정이나 사상을 전달하는 언어라는 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점차 수어라는 용어가 지지를 받게 된다. 이처럼 두 용어 사용에 대한 의견이 대립하는 가운데 수화와 수어를 아우를 수 있는 수화언어라고 부르되, 그 약어로 수어를 사용하자는 절충안이 제시됐다. 이에 따라 한국수화언어법에서 이를 한국수화언어(한국수어)’로 정의해 용어 사용에 대한 논의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상태다. 최상배(공주대 특수교육과) 교수는 수어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수어의 언어학적 관점을 강조하는 분위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는 수어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활용될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오랜 시간 팬터마임, 제스처, 몸짓 등으로 인식된 수어는, 1960년 미국의 윌리엄 스토키(William Stokoe) 박사가 미국수어의 내부 구조를 연구하며 언어학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수어가 보편적인 언어의 특징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는 사용자가 분리할 수 있는 분절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한국어가 의미의 차이를 가져오는 가장 작은 단위인 음소로 이뤄진 것처럼, 수어도 수어소로 구성된다. 스토키 박사는 수어의 단어가 손의 모양인 수형, 손의 위치인 수위, 손의 움직임인 수동으로 구성된다고 봤으며, 이후 손가락 끝 혹은 손바닥의 방향인 수향, 손을 제외한 신체의 움직임인 비수지신호가 추가된다. 예를 들면 한국수어 단어 예쁘다의 경우 한 손 주먹의 검지를 펴고, ‘어렵다는 한 손 주먹의 검지를 구부린다. 손의 모양, 즉 수형의 차이로 단어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원성옥(한국복지대 수화통역과) 교수는 수어는 작은 단위로 쪼갤 수 있다이를 통해 다른 어휘로 만들어질 수 있는 생산성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오전과 오후는 손의 모양은 같으나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br>
오전과 오후는 손의 모양은 같으나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맛있다와 맛있니는 손의 모양은 같으나 표정에 따른 의미가 달라진다<br>
맛있다와 맛있니는 손의 모양은 같으나 표정에 따른 의미가 달라진다

 

  언어 기호만을 보고 그 의미를 예측할 수 없는 특징인 자의성을 가지는 것도 수어가 언어인 이유다. 즉 손과 몸을 통해 표현되는 기호와 그 의미가 상호 독립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과 같은 단어는 양손으로 지붕 모양을 만들어 기호에서 의미를 유추하기 쉽지만, 오른손의 두 손가락을 펴서 왼 주먹을 두드리는 선생님이란 단어는 기호에서 의미를 알아내기가 어렵다. 원성옥 교수는 수어는 기호가 사물이나 활동의 형태를 반영하는 도상성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언어를 사용하며 문화가 개입돼 어휘로 고정되는 과정에서 도상성이 휘발되는 경향이 있다도상성이 강한 나무, 집이라는 수어가 미국수어와 한국수어에서 달리 나타나는 것도 자의성이 나타난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수어는 언어이지만, 음성으로 표현하고 청각으로 수용되는 음성언어가 아닌 손과 몸의 움직임으로 표현하고 시각으로 수용되는 시각언어다. 음성언어와 차별되는 시각언어로서 수어의 특징은 공간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내가 너에게 책을 주겠다는 문장에서 동사 주다는 수어 공간 안의 주어 위치에서 목적어의 위치로 움직인다. 한국어처럼 조사로 표현하지 않아도 동사의 방향성으로 주어와 목적어의 표시가 가능한 것이다. 또 비언어적 특성인 표정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최상배 교수는 한국어에서는 문법형태소와 어미, 어순 등이 중요한 문법적인 기능을 하지만, 한국수어에서는 공간과 표정, 속도가 중요한 문법적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수어 못 배우는 농인아이들

  이처럼 언어면서도 시각언어로서의 특징을 가지는 수어이지만, 농인으로 태어나는 농아동들은 처음부터 수어를 습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습득하게 된 수어도 완전한 시각언어가 아닌 한국어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는 대부분의 농아동이 농인 부모가 아닌 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수어에 대한 오해와 가치 절하, 농에 대한 병리학적 관점, 교육을 실시할 교사의 전문성 부족 등이 이른 수어 교육을 방해한다. 원성옥 교수는 대부분의 청인 부모는 자녀를 수어 환경에 노출하기 두려워한다수어환경에 노출시키고자 해도, 수어를 가르치고 교육할 수 있는 환경이나 기관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제1언어로 수어 대신 음성언어를 배우는 농아동은 음성언어를 제한적으로 듣거나 왜곡해서 듣게 되고, 성장하면서 수어를 배우게 된다. 하지만 이때 배우는 수어는 그 자체로서의 문법을 가지는 완벽한 시각언어가 아닌 한국어 어순과 한국어 문법형태소를 사용하는 수지 한국어(Signed Korean)인 경우가 많다. 한국어의 영향을 받은 수어를 사용하기에 수지 한국어를 배우는 농아동들은 완벽한 언어 형태에 노출되기 어렵다. 따라서 농아동들은 자연적인 수어를 배우지도 못하며, 또 음성언어 습득에 어려움이 있어 한국어 문법이나 어휘를 이해하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로 2014년 국립국어원에서 실시한 농인의 문해교육실태 기초 연구에 의하면, 농인 학생의 국어 문해력 지수는 청인 학생의 65% 정도에 불과했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전문가들은 농아동에게 수어를 제1언어로 삼아 완벽하게 언어를 습득시킨 후, 그것을 매개로 한국어에 접근시키는 이중언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1언어의 습득이 제2언어의 습득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원성옥 교수는 언어를 잘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서는 언어 자체에 대한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이러한 배경지식은 제1언어를 통해 배우는 것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농아동들에게는 풍부한 수어 모델을 제공하고 체계적인 수어 교육을 제공할 기관이 없다. 또한 농학교에서는 농아동이 완전히 수어에만 접근할 수 있는 수어 교과목이 없고 국어과 교육과정 안에 수어를 다루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농아동들이 어린 시절부터 수어 환경에 접근해 수어를 습득하고, 수어를 통해 세상지식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원성옥 교수는 농아동들을 위한 유아원 등의 교육기관이 설립돼야 한다그와 동시에 농학교에 수어 교과목 개설, 농자녀를 둔 청인 부모를 위한 수어교육 프로그램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수화언어법 시행됐지만남은 과제 많아

  한국수어는 명실상부한 농인의 제1언어이지만, 수어에 대한 가치 절하, 수어 교원의 부족 등으로 인한 사용 환경 미비로 농인의 삶이 여러 분야에서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또한 그간 장애인복지법 등을 통해 농인의 권리 신장을 위한 노력이 있어왔으나, 농인을 위한 수어통역이 필요하다는 구호만 있었을 뿐 농인의 언어권과 삶의 질 향상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201512, 한국수화언어법이 국회에서 통과됐고 20168월 관련 시행령 및 시행규칙과 함께 시행됐다.

  한국수화언어법은 한국수어를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공용어로 선언 한국수어사용 환경 개선을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 명시 한국수어 교원 양성 등 한국수어 사용 촉진과 보급 농인에게 수어 통역 지원 등을 주요 골자로 한다. 이는 수어를 독자적인 언어로 인정했다는 점, 농인을 장애의 관점이 아닌 또 하나의 문화로 바라봤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최상배 교수는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수어의 언어학적·교육적·의사소통적 가치가 명시된 법이 없었다법에서 수어의 언어학적 가치와 위상을 명시하고, 수어로 교육 받을 권리가 있음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수화언어법엔 농인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의무규정이 거의 없고, 대부분 선언적인 내용이 많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농인들의 간절한 염원으로 법이 제정됐지만 그들이 피부로 느끼는 변화는 미흡한 실정이다. 최상배 교수는 수어법을 제정한 외국의 경우에도 법 제정이 농인의 삶을 직접 변화시키지는 못했다법 시행 이후 수어발전과 농인의 삶 변화를 추적, 연구한 뉴질랜드의 사례처럼, 우리나라도 법률이 지켜지는지를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성옥 교수는 법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법을 집행할 수 있는 행정이나 재정적 지원, 실질적 정책이 나와야 한다법에서 할 수 있다고 말해도 실제로 이뤄지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에 한국수화언어법 관련 행정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민간보조사업 등을 통해 수어 교육이나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대규모 말뭉치 구축을 통한 한국수어 사전 편찬 한국수어 교원능력검정시험 및 수어능력검정시험 시행 수어 문법서, 교원 자격 관련 교재 연구 수어 홍보 자료 제작 등을 통해 한국수어를 보급, 홍보하고 있다. 국립국어원 특수언어진흥과 이현화 주무관은 법이 제정된다고 수화언어를 바라보는 시선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다이를 토대로 사회적 합의, 인식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립국어원 및 유관기관에서는 한국수화언어법을 인지하고 있으며, 관련 조항을 지킬 수 있도록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수화언어법은 시행 후 올해로 4년째를 맞이했다. 또 하나의 언어인 한국수어에 대한 연구, 그리고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에 대한 인식 개선으로 진정한 다문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ㅣ전남혁 기자 mike@

그래픽제공ㅣ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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