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개봉하기 며칠 전부터 인터넷에는 스포일러를 조심해달라는 글이 쏟아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강의 줄거리를 알고 있을 게 거의 분명하지만, 영화의 내용을 미리 알기 싫은 사람들은 여전히 많아 보였다. 이 영화의 묘미가 이를테면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초기 시즌처럼 정형화된 틀을 깨는 서사에 있지 않고, 후속편과 출연 계약에 관한 뉴스가 이미 누가 죽고 사는지를 알려주고 있음에도 그랬다.

  ‘스포일러 주의(spoiler alert)’2000년대부터 인터넷을 중심으로 확산된 말이다. 의도하지 않아도 수많은 정보를 접하는 인터넷의 특성상 스포일러에 노출될 확률이 컸고, 사람들이 이를 방지할 매너를 요구하면서 이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2005,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평론가에게는 스포일러를 할 권한이 없다>라는 글에서 이 새로운 현상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영화의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내리는 순간을 목격하고 그에 관해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것이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관객들에게는 그 순간을 편견 없이 마주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스포일러는 저 선택의 순간에 놀랄 수 있는 권리를 빼앗아간다. 예를 들어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결말부에서 주인공이 내린 선택은 윤리적으로 매우 논쟁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선택을 이해할 수도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을 미리 폭로하면 사람들은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편견을 영화에 투영시키게 된다.

  이버트의 설명이 여전히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어벤져스 엔드게임><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다르다. 이 영화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주인공을 극한까지 밀어붙근본적인 윤리적 문제를 환기시키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제적 활동범위를 가진 무장조직의 통제, 여성의 역할, 현대적인 아프리카 신화처럼 현안들이 드문드문 떠오르기는 해도 마블의 영화에서 윤리적 고찰을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마도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은 지난 10여 년 동안 21편의 영화에서 전개해온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소결을 제작진이 어떻게 한 편의 조금 긴 영화에 담아내는가이다. 얼마나 많은 떡밥을 회수하고 또 얼마나 다시 던질 것인지, 어떤 장면이 인터넷 으로 돌아다닐 것인지도 흥미로운 요소다. 관객들이 영화에서 기대하는 경험은 한 편의 영화에 담겨 있는 일관된 서사를 넘어선지 오래다.

  ‘스포일러 주의라는 말이 흥미로운 이유는 영화 안의 세계와 바깥의 세계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해진 지금에도 어떤 경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데 있다. 우리가 이 말을 통해 누리고 싶은 권리는 어떤 것일까? ‘편견 없이 윤리적 문제에 마주하는 것처럼 고상한 것은 아니더라도 오직 영화관에서 느끼고 싶은 경험이 무엇인지 되물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답이 영화라는 경험을 조금 더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고 믿으면서 아직 스포일러를 당하지 않은 그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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