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 정경대 교수·행정학과

  많은 교수는 첫 수업 시간에, 해당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얘기한다. 행정학 개론 첫 시간에 내가 빼놓지 않고 얘기하는 것이 ‘value for money’라는 것이다. ‘돈값을 해라라는 말이다. 나는 이게 행정이 정당성을 획득하는 데 가장 기본이라고 믿는다. 정부는 국민에게 각종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한다. 비용은 세금을 걷어 충당한다. 내가 번 100만 원에서 세금으로 30만 원을 떼어가면 내가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돈은 70만 원이고, 20만 원을 떼어가면 80만 원이 된다. 20만 원 대신 30만 원 떼는 것이 정당성을 지니려면, 추가로 떼어 간 10만 원으로 정부가 제공한 재화와 서비스가, 개개인이 자신을 위해 10만 원 쓸 때보다 더 큰 가치를 사회에 제공해야 한다. 정부가 쓰는 것이, 개인이 각자 쓰는 것보다 못하면 행정은 정당성을 상실한다.

  행정에서 ‘value for money’가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강조하고 챙기지 않으면, 행정은 속성상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사고파는 것이라면 굳이 강조할 필요도 챙길 이유도 없다. 짜장면을 먹으려면 짜장면값 6000원을 내야 한다. 짜장면이 주는 만족도가 현금 6000 원보다 못하면 사 먹을 리 만무하다(물론 내 돈 내고 먹을 때의 얘기다). 정부 산출물은 다르다. 비용과 편익이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세금 안 내도 대한민국 안에 거주하면 국방과 치안 서비스를 받는다. 인천공항 건설 비용을 인천공항 이용자로부터 충당한 것은 아니다. 비용과 편익이 분리된 탓에, 편익만 보려 하고 본전 생각은 안 한다. 어차피 1/n로 부담하면 나한테 돌아오는 편익이 많을수록 이익이다. 단체로 회식하고 비용은 1/n로 충당한다면? 옆 친구 2인분 먹을 때 나만 1인분 먹고 앞 친구는 후식 냉면 시켰는데 나만 사양하면, 나만 손해 보는 셈이니 배불러도 추가하고 남기더라도 후식 주문한다.

  비용 편익 분리라는 특성 탓에 행정은 낭비되기 쉽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챙겨야 한다. 물론 모든 경우마다 일일이 따질 수는 없다. 하지만 재정이 많이 투입되는 굵직한 사업이라면 비교를 의무화해서 편익>비용인 경우에만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재정법 381항은 총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며, 국가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흔히 예타라고 불리는 예비타당성 조사는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세 항목을 따져서 사업을 해도 되는지, 즉 예타 통과 여부를 결정한다. 이 중 경제성 항목에서는 비용과 편익을 비교해서 비용>편익일 때 타당성이 있다고 평가한다. 때로는 경제성이 부족해도 정책적으로 중요하거나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한 사업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책성과 지역균형발전도 함께 따져서 최종 판단을 한다. ‘예타IMF 외환위기 이후 국가재정의 낭비를 막기 위해 도입했는데, 그동안 무분별한 건설사업을 막는데 상당히 기여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올해 초, 정부는 시·도 지자체가 신청한 개발사업 23241000억 원에 대해 예타 면제를 발표했다. 이유는 지역균형발전이었다. 예타를 규정한 국가재정법 제38조는 2항에서 예타를 면제할 수 있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지역균형발전을 위하여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경우이다. 물론 예타에서 사업 타당성을 따질 때 지역균형발전을 고려한다. 하지만 경제성과 함께 고려한다. 그래서 지역균형발전에 중요해도 경제성이 다소 떨어지면 통과하지만 너무 떨어지면 힘들다. 그 때문에 정말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중요하면 예타를 건너뛰게 허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규정의 취지는 엄격히 따져서 예외적으로 허용하라는 것이지, 이번처럼 모든 지자체마다 통 크게 일괄 면제해 주라는 것은 아니다. 아울러 정부는 예타 개편안도 내놓았다. 앞으로는 경제성이 다소가 아니라 몹시떨어져도 다른 항목이 중요하면 통과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올해 들어 벌어진 예타 면제와 개편은, 행정이 스스로 자기 정당성을 부인하는 조치들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value for money’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행정학자로서 마땅히 답해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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