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달려온 1학기가 끝난 지도 어느덧 한 달, 친구들과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 소리로 가득 찼던 캠퍼스는 고요해졌고, 학생들은 모처럼 찾아온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SNS에는 친구들의 여행 소식이 끊임없이 올라오는데, 계절학기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으로 방학에도 안암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아직 즐기지 못한 휴가에 실망하기엔 이르다.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학교 주변에도 휴가를 알차게 즐길만한 장소들이 있다. 비록 멀리는 못가지만, 반나절만이라도 남부럽지 않은 나만의 시간을 즐겨보자.

 

 아리랑 시네센터
 아리랑 시네센터

#1. 아리랑 시네센터
개운사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2115번 버스를 타고 성신여대를 지나면, 아리랑 시네·미디어 센터라는 이름의 정류장이 등장한다. 아리랑 시네센터는 성북구청에서 운영하는 영화관으로, 저렴한 가격에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골고루 볼 수 있고, 다양한 정기 무료상영과 영화제도 즐길 수 있다.
지하 1층, 지상 1층에 각각 위치한 제1, 2 상영관은 주로 상업영화를 상영하지만, 3층에 위치한 제3 상영관은 다르다. 이곳은 국내에 8곳밖에 없는 독립영화전용관 중 하나로, 상영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다양한 독립영화들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5월 진행한 <독립영화 반짝반짝전>에서는 아리랑 시네센터를 포함, 국내 4곳의 독립영화전용관이 공동기획전을 준비하여 미개봉작 독립영화를 4주 동안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3층에는 작은 도서관, 2층에는 카페와 야외무비테라스가 마련되어 있어 작은 여유를 즐길 수 있다.

 

팔레트
팔레트

#2. 팔레트
시네 센터에서 버스를 타고 성신여대 후문으로 가면, 번화가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골목이 조용히 그 존재를 드러낸다. 다양한 식당과 카페가 위치한 건물 지하에 ‘커피&드로잉’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카페 ‘팔레트’는 잊고 있었던 예술적 재능을 일깨워준다.
화려하지만 잔잔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카페 내부는 화방만큼 다양한 재료가 비치된 선반들이 벽을 메우고 있다. 음료가 포함된 세트 메뉴를 선택하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캔버스나 아르쉬지가 함께 제공된다. 저렴한 가격에 전문가급 재료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팔레트’의 장점이다. 어린 시절 스케치북에 낙서할 때 사용했던 색연필부터 미술실에서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유화 물감까지, ‘팔레트’에서는 다양한 재료로 자유롭게 예술본능을 펼칠 수 있다. 한쪽 선반에는 미술 관련 서적들이 가득 채워져 있어 미술에 낯선 사람들도 쉽게 미술에 다가설 수 있다. 위스키의 향을 담은 블루 아이리쉬 라떼 한잔을 마시며 나만의 예술 세계에 빠지다 보면, 어느새 명작이 탄생해 있을지도 모른다.

 

반듯한잔
반듯한잔

#3. 반듯한잔
지하에 있는 팔레트에서 올라오면 정면에 정갈하게 ‘반듯한잔’이라고 쓰인 간판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소주, 막걸리 pub’이라는 단어의 조합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다. 자갈밭의 돌바닥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내부가 나타나며 막걸리 특유의 한국적 정서를 배가시킨다. “사케, 와인뿐만 아니라 막걸리도 좋은 분위기에서 마시면 저렴한 가격에 고급스러운 소비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이희영(남·35) 씨와 주지예(여·28) 씨가 막걸리 pub을 시도하게 된 계기이다. “막걸리의 분위기에는 한옥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이희영 씨가 직접 리모델링한 가게 내부는 그가 추구하는 한국식 고급스러움에 걸맞게 적당히 화려하면서도, 한국의 전통미를 잘 담고 있다.
한국식 고급스러움을 널리 알리기 위한 그의 노력은 대부분이 퓨전 요리로 구성된 메뉴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곧 출시될 ‘마약 갈비살 구이 쌈’은 고추장 특유의 맛이 낯설 수 있는 외국인들을 배려해 고추장 소스를 새롭게 변형했다.
메뉴판의 세 페이지가 훌쩍 넘어가는 막걸리 종류는 새로운 시도에 목마른 사람들을 유혹한다. 우도 땅콩 막걸리처럼 낯익은 지역 특산 막걸리부터 유자 막걸리, 인생 막걸리 등 생소한 막걸리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어 막걸리를 처음 시도해보는 사람들에게도 폭넓은 선택지를 제공한다. 투박한 형태의 익숙한 막걸리 잔이 아닌, 잘 세공된 유리잔에 막걸리를 따라 마시며 반나절의 짧은 휴가를 누려보자. 내일이면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야 할 테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온전한 휴식을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최은영 기자 emily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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