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호 사범대 교수·교육학과<br>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인간 사회는 자율이라는 삶의 양식을 먹고 성장한다. 자율은 쓰임에 따라 의미를 달리한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자치 보장이 자율의 핵심이다. 그만큼 다른 것에 간섭받거나 지배당하지 않아야 한다. 칸트(I. Kant)는 의지가 정언 명령에 따르는 자율적 의지를 자유 의지라 했다. 반면, 감성적 의지가 자연 욕망에 따르는 것을 타율이라 불렀다.

  왜, 지금, 지성인이면 누구나 아는 이런 화두를 되씹어야 하는가? 애끓는 답답함이 고등교육의 주변을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에서 자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동력이다. 특히, 고등교육의 산실인 대학은 더욱 그러하다. 서구의 중세 대학이 지녔던 자율은 신성하게 느껴지기까지 했고, 동양 사회에서 대학도 국가 동량의 마당이자 지성의 창조 정신이 타오르던 교육의 공간이었다. 치외법권(治外法權)은 만개했고, 지성은 성숙을 거듭했다.

  이제, 시대는 달라졌다. 그에 따라 새로운 시대정신이 요청된다. 새로운 대학은 어떤 존재인가? 아니, 어떤 존재여야 할까? 나는 대학인으로서 자율적인가? 선뜻, 긍정적 대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타율적인가? 아니면, 자율과 타율의 의미를 넘어선, 3의 길, 우회로(迂廻路)를 모색하는가? 달라진 상황만큼이나 대학의 구성원들은 여러 차원에서 혼란스럽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힘들다’, ‘어렵다는 말로 하루를 보내는 상황에서 대학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물음에 함부로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해답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대학의 전복을 염려하는 분들의 열정과 노력이 여기저기 보이기도 한다.

  최근, 대학은 압박당하고 있다. 주요 사립대학 감사를 비롯하여 다양한 측면의 고등교육정책은 전통적 대학이 누려왔던 자율을 감금시키려 한다. 이는 자율이라는 이름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거대한 힘이 대학을 간섭하는 양상이다. 대학 지배의 초인종은 눌러졌다. 우리는 스스로 어떤 조치를 요청할 수 있을까? 이미 예방하지 못했다면, 할 수 있는 조치는 치료이다.

  동양의 사유 실천 가운데, ‘정명(正名)’이라는 말이 있다. 정명은 문자 그대로 존재의 명칭이 실제에 맞도록 바로잡으려는 주장이다. ‘대학의 정명대학이라는 명칭이 그 실제에 맞게 바로 잡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대학의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을까? 포인트는 거기에 있다. 대학이 대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존재하지 않았다면, 대학은 정명을 확립하는 작업부터 자율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다.

  공자(孔子)가 고민한 정명은 너무나 간단하지만 의미심장하다. 윤리적 차원에서 볼 때,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이를 대학 구성원에 빗대어보면, ‘대학의 지도자는 지도자다워야 하고, 직원은 직원다워야 하며, 교수는 교수다워야 하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

  자율을 신성하게 여기던 관점으로 볼 때, 대학이 대학답지 못한 것은 자율의 상실 때문이다. 대학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 지도자답고, 교직원, 학생 모두가 자신의 이름에 맞게 활동한다면, 문제의 소지는 상당히 줄어든다. 명칭과 실제의 불일치가 대학 자율을 해치는 최대의 적이다. 자율을 해치는 요소가 외부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면, 그에 반항하거나 저항해야 한다. 반드시 항거를 통해 외압을 물리쳐야 한다. 고등교육의 민주화를 갈망하는 한 그것은 대학 자율과 정명을 위한 최소한의 권리이자 최대한의 책무성이다.

  보다 큰 문제는 대학 내부에 존재한다. 대학인 스스로 자신의 이름에 합당한 자율을 포기하거나 그에 대한 암묵적 동의를 하며 자율에 무관심할 때, 대학이라는 존재의 의지는 상실된다. 의지를 상실할 경우, 지속 가능한 삶은 물론이고, 어떤 창조적 생산력도 기대할 수 없다.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이다. 전락이자 퇴락이다. 추락의 맛을 본 대학은 더 이상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할 수 없다.

  명칭에 맞는 실제의 회복! 그것이야말로 대학 자율의 진정한 재생이다.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대학 자율의 새로운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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