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되는 것은 사자와 사는 일인가' - 고정희

어린 딸들이 받아쓰는 훈육 노트에는
여자가 되어라
여자가 되어라 씌어있다
어린 딸들이 여자가 되기 위해
손발에 돋은 날개를 자르는 동안
여자 아닌 모든 것은 사자의 발톱이 된다

일하는 여자들이 받아쓰는 교양강좌 노트에는
직장의 꽃이 되어라
일터의 꽃이 되어라 씌어있다
일터의 여자들이 꽃이 되기 위해
손틉을 자르고 리본을 꽂고
얼굴에 지분을 바르는 동안
꽃 아닌 모든 것은 사자의 이빨이 된다

(중략)

철학이 여자를 불러 사자가 되고
권력이 여자를 불러 사자가 되고
종교가 여자를 불러 사자로 둔갑한다

(중략)

그러니 여자여
그대 여자 되는 것을 거부한다면
사자의 발톱은 평화?
사자의 이빨은 고요?
사자의 기상은 열반?

 

  아주 오래전부터 나의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 다짐의 원천이 된 수많은 기억들은 차츰차츰 쌓여서 언제부터였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추운 겨울을 난방이 안 되는 시댁에서 보내야했던 어머니의 뱃속부터일지도 모른다. 큰 아들을 둔 집안 첫째 딸로서 동생을 업어 키워야했던 이야기. 아버지가 석사를 따는 동안 본인은 포기할 수밖에 없던 대학원 논문을 뒤늦은 나이에 쓰던 재작년 새벽. 밤 11시에 퇴근해서도 새벽 2시까지 아버지가 벗어놓은 양말을 치우고 청소기를 돌리던 어제. 그 모든 어머니의 모습들이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 사회는 어머니에게, 아내에게, 딸에게, 여성에게 아주 각박하다고. 그들이 놓아야했던 열정, 시간, 야망들은 그들을 더 풍부하게 이루지 못하고 다른 곳에서 사자가 되었다. 

  그래서 그렇게 살지 않기로 다짐했음에도 그것이 가능할 지 나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학생 때부터 친척들이 종용하던 결혼 얘기를 듣고, 교내 한편에는 성추행 대자보가 늘 자리하며, 운동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나에게 참여할 수 있는 학교체육대회 종목이 하나도 없을 때. 그때마다 누구 하나를 탓할 수도 없어서 가슴 깊이서 울고 또 화를 내었다. 앞으로 더 많이 마주칠 지도 모를 벽을 떠올리며 더 이상 한숨 쉬지 말고 그 대신 주먹 쥐고 일어서기를 응원한다. 나에게, 그리고 이에 공감하는 모두에게 ‘여자가 되지 말고 사자가 되어라-’고 말하고 싶다.


전희진(미디어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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