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살던 동네 인근 시장 안에 개고기 골목이 있었다. 낡고 비좁은 철창 안, 자신들의 가혹한 운명을 하릴없이 기다리는 개들에게 눈이 안 갈 수가 없는 노릇이다. ‘개고기라는 붉은 글씨 아래, 포로처럼 갇혀 우울함을 토해내는 개들의 광경이 마음 깊이 박혔다.

  올 여름에도 서울광장은 개고기 찬반논쟁으로 들끓었다. 동물보호단체의 다른 한편에선 개 식용 찬성론자들의 개고기 시식 쇼가 펼쳐졌다. 먹는 건 자유고, 먹는 걸 손가락질할 필요도 없겠지만 구태여 찬성까지 할 정도인가. 생명존중과 동물보호 같은 감성의 논리가 아니더라도 작금의 시점에서 개를 먹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축산물로서 는 애매한 지위에 있다. 축산법상 개는 가축이지만, 가축의 사육·도살, 가공·유통 전반을 관할하는 축산물위생관리법의 대상은 아니다. 이는 잔인하게 동물을 살해하는 행위를 금하는 동물보호법과도 얽혀, 개고기는 법의 안팎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무()호적 상태다. 개에도 축산물위생관리법을 적용하자니 개고기 허용국가임을 선포하는 꼴이고, 가축에서 빼자니 개 농가와 소수 개고기 마니아들의 반발이 거셀 테니 정부도 딜레마다.

  축산물위생관리법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서 사육·도축되는지 알 길도 규제할 길도 없다. ‘개 농장의 열악하고 비정한 실태는 수없이 폭로돼 왔다. 쓰레기 수준의 저질 먹이, 오물로 뒤덮인 창살 속 곪아가는 상처, 거기에 개들이 겪을 상상 이상의 스트레스. 개 아닌 다른 동물의 고기라도 마음 놓고 입에 대긴 어렵다.

  개 식용에 대한 가치판단에 앞서, 관리체계가 전무한 데다 동물학대의 온상이라 지적받는 개고기가 정상적인 식품일까. 병들고 불행한 고기를 먹는 걸 보신(補身)’이라 부르는 것도 어폐다. 먹을 고기가 넘치는 요즘 세상, 그것도 국제사회의 힐난과 조롱까지 감수하면서까지 눈감아줄 필요는 없다. 법망 틈 사이 수년 째 표류하는 개고기, 반복되는 의혹과 논쟁을 정리하기 위해선 전면적 합법화이든 불법화이든 명쾌한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가능하다면 하루빨리 사람()과 개()를 가로막는 철장이 사라져, 내년 이맘때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친구들이 자유 아래 사람과 마주하는 복()이 되길 기대해본다.

 

박진웅 문화부장 queb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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