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19일 충남 당진우체국 소속 집배원 A 씨가 자택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집배원의 사망 소식이 생소한 뉴스는 아니다. 매년 평균 20여 명의 집배원이 과로로 세상을 떠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인력 부족에 따른 과중한 업무이다. 일반통상 우편은 줄고 있지만, 집배원이 직접 고객을 찾아 배달해야 하는 등기와 택배 물량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는 우편사업이 계속 적자라며 인력 충원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언제부턴가 집배원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편지를 건네며 고객들과 주고받는 안부 인사 한마디도 이제는 옛 추억이다. 수도권 집배원의 하루 평균 배달물량인 1252통의 우편물을 배달하다 보면 고객들에게 친절히 응대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폭염주의보가 발령돼도, 미세먼지가 극심해도 집배원들은 묵묵히 오토바이를 타고 도시 곳곳을 오갈 뿐이다.

 

점심은 거르기 일쑤, 연차는 그림의 떡

  집배원들은 점심을 거르고 일할 때가 많다. 시간에 쫓기면서 본인이 맡은 물량을 해결하다 보면 점심시간을 한참 넘길 때가 비일비재하다. 경기 하남우체국 집배원인 김대웅(·44) 씨는 빨리 먹을 수 있는 짜장면으로 끼니를 때울 때가 잦다. “배달하다 보면 반송할 물량이 몇 개씩 생겨요. 그러다 보면 에잇, 밥 먹지 말고 빨리 들어가서 반송 물량 처리해야지할 때가 많죠. 어제도 점심 거르고 오후 5시에 짜장면으로 점심 겸 저녁을 해결했어요.” 전국우정노조(위원장=이동호, 우정노조) 충청지역본부 대덕우체국 지부장인 제갈정(·42) 씨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배달 구역에 중국 음식점이 보이면 들어가서 짜장면을 미리 주문해놔요. 그러고 배달 물량 하나 처리한 다음에 돌아와서 점심을 먹기도 합니다.”

  집배원들에게 연차는 그림의 떡이다. 누구도 쓰지 말라고 강요는 안 하지만, 자발적으로 휴가를 반납하곤 한다. 한 명이 빠지면 동료들이 빠진 사람의 구역을 나눠 우편물을 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겸해서 배달한다는 의미에서 겸배라고 불리는 업무 추가 배분은 빠진 인력을 채울 예비인력이 전혀 없기에 발생한다. 올해로 6년 차 경기 하남우체국 집배원인 B 씨는 다쳤을 때를 제외하고는 연차를 쓴 적이 없다. “한 명이 빠지면 남은 조원들이 아파트 대여섯개 동을 추가로 맡아요. 미안해서라도 연차를 쓸 수가 없죠.” 현실이 이렇다 보니 B 씨는 올해 1월 말, 연골 수술을 받고도 6개월간의 재활치료를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2개월 만에 다시 출근을 시작했다. “아직 완치는 안 돼서 뛸 때마다 아파요. 그래도 그냥 참고하는 거죠.”

  넓은 집배 구역으로 인한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경북 영천우체국에 근무했다는 C 씨는 하루 운행 거리가 100km 이상 나올 때도 많았다고 한다. “도시 외곽 전원주택에 사시는 분들이 택배를 시키거나 신문을 보시면 그거 하나 배달하느라 20km 정도 움직이기도 해요. 독거노인들이 많은 시골 산비탈 쪽 가면 식당이 없어서 끼니때를 놓치기도 합니다.” 하남우체국에서 위례 신도시 구역을 담당하는 이건종(·35) 씨도 먼 곳에 배달을 나가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차에 택배를 싣고 신도시에 도착한 다음에 다시 오토바이로 갈아타고 배달을 나갑니다. 왕복 20km 되는 곳까지 배달하다 보니 남들보다 퇴근 시간이 1시간 정도 늦어요.”

  실제 업무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주52시간제 도입도 집배원들에겐 한숨거리다. 52시간 근무에서 제외되는 근무시간 특례업종에서 우편업이 빠지면서 300인 이상 사업장에 속한 비공무원 집배원들은 71일부터 주52시간제를 지키게 됐다. (300인 미만의 사업장에 속한 비공무원 집배원들은 올해까지는 1주에 68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하다.) 우정노조 경인지역본부 하남우체국 이용덕 지부장은 일주일 동안 근로시간 52시간을 넘기지 않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한다. “하남우체국 집배원 한 명이 보통 하루에 통상 우편 1000, 등기 200, 택배 4~50통을 맡아요. 인력 증원은 없고 맡은 일은 똑같은데 근무시간만 줄이라 하니 직원들의 부담감이 적지 않습니다.”

 

노동환경 개선 추진 중이나 해결책은 막막

  집배원들의 열악한 업무환경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자, 정부에서는 민간 전문가와 노동자 측 위원, 우정사업본부(우본) 측 위원으로 구성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기획추진단(단장=노광표, 추진단)20178월에 설립했다. 추진단은 26차례의 회의를 거듭한 끝에 7가지 정책권고사항과 집배원 노동실태 조사 결과를 작년 10월 발표했다.

  추진단의 자료에 따르면, 집배원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745시간으로 OECD 국가 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인 1763시간을 훨씬 웃돈다. 2017년 집배원 안전사고 건수는 265건에 달하며 이 중 교통사고가 216, 사망 사례는 3건이다. 2017년 집배원 재해율은 1.62%2016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전체 산업 재해율인 0.49%3배 이상이다. 이에 추진단은 인력 충원 토요근무 폐지를 위한 사회적 협약 마련 안전시스템 구축 집배부하량산출시스템 개선 조직문화 혁신 업무완화를 위한 제도개편 재정 확보의 7대 권고사항을 제시했다.

  핵심은 인력 충원이었다. 추진단은 올해 내에 1000명을 증원하고 이후 재정 확보에 따라 단계적으로 인력을 추가 증원할 것을 우본 측에 제안했다. 또 증원된 인력은 전체 우체국 중 주52시간제 위반 영역이나 과중 노동이 일상화된 곳에 집중적으로 배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편사업의 적자로 인해 인력 충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우정노조는 집배원 인력증원 및 토요배달 폐지를 주장하며 노조 출범 이후 61년 만의 첫 총파업에 9일부터 돌입할 예정이었다. 총파업은 시행 직전 우본과 우정노조 측의 협상이 타결되며 일단락됐다. 우본 측은 비정규직인 위탁 택배원 750명과 직종 전환을 통한 집배원 238명 증원, 농어촌지역 집배원의 주5일제 시행을 위한 사회적 합의 기구의 운용을 약속했다. 제갈정 대덕우체국 지부장은 위탁 택배원들이 택배 물량을 줄여주면 집배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반가움을 내비치면서도 그렇지만 750명이라는 숫자는 부족하다. 결국 개별 우체국에 돌아가는 인원은 몇 명 안 된다고 덧붙였다.

  우정노조는 집배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업무인 택배 업무를 줄이기 위해 토요근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진단도 장시간 노동의 해소를 위해서는 토요근무의 폐지를 위한 사회적 협약이 필요하다고 동조했다. 하지만, 우편사업이 적자를 보이는 상황에서 또 다른 손해를 감수하기도 쉽지 않다. 추진단의 전문가 위원으로 활동한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014년에 우본과 노사 합의로 1년여 토요 택배를 중단한 적이 있었다당시 우본은 이 기간에 우체국 계약업체 521곳 이탈, 매출액 500억 원 감소라는 손실을 봤다고 발표했다고 말했다.

  토요 택배를 폐지해 택배사업의 규모를 줄이자니 소외지역에 대한 택배업무를 우체국이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공공성의 문제도 걸린다. 이 위원은 시장에 맡겨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우편사업의 공적인 기능 역시 여전히 중요하다농어촌 지역이나 산간오지 등에 대한 택배 배송이 포함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추진단은 국민들의 의견을 고려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차선책으로 인력 증원을 전제한 이원화 근무체계(~, ~)를 제안하기도 했다.

 

우본, “적자 심해 인력 충원 어려워

  우본 측에서는 우편사업의 적자를 이유로 들며 인력 충원에 어려움이 많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매년 우편 물량이 감소하고 인건비는 증가함에 따라 우편 수지는 꾸준히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추진단의 자료에 따르면 우편사업의 인건비성 경비는 2014년 약 29000억 원에서 2017년 약 3600억 원으로 늘었다. 그 결과로 2016년 우편 수지는 674억 원, 2017년 우편 수지는 539억 원의 적자를 보였다.

  이에 추진단은 우편 공공성 유지와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우편요금·등기 수수료의 단계적 인상을 제안하기도 했다. 우편사업의 적자를 줄이기 위해 우편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4월 기준 한국의 우편요금은 25g 기준 330원으로 일본 25g 기준 699, 프랑스 20g 기준 958원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다. 이에 우본 측에서는 5월부터 우편물 5g 이하는 300원에서 350원으로, 25g 이하는 330원에서 380원으로 중량별로 50원을 인상했다. 이원희(한경대 행정학과) 교수는 우편요금을 크게 인상하면 저소득층에게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우편사업의 원칙이 깨질 수 있다공공서비스인 만큼 우편요금이 원가 대비 가격이 낮다면 그 적자분을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게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현재 우체국 사업은 우편, 예금, 보험의 3가지 분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우편의 경우에는 매년 적자를 기록하지만, 예금사업은 흑자를 내고 있어 예금사업의 잉여 이익금으로 우편사업의 적자를 보전한다. 하지만, 추진단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예금사업의 우편 적자 보전금은 1002억으로 적자 보전을 넘어서 인력 충원까지 꾀하기엔 부족한 금액이다. 이에 우체국의 재정구조를 개혁하고 각 사업 간의 교차 보조를 이뤄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순영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체국 금융은 국가가 뒤에 있다는 안정감과 신뢰감 때문에 국민이 많이 이용한다우체국 금융의 운영을 적정한 수준으로 활성화해 우편사업의 적자를 보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성수 기자 fourdollars@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