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의 여파로 일본 물건에 대한 불매운동이 거세다. 이미 자동차와 맥주와 같은 일본산 소비재의 매출이 크게는 70%까지 급감했다고도 한다. 일본 정부의 조치가 그동안 옹호하던 자유무역을 스스로 부정한 꼴이며, 국익을 위해 경제 보복도 불사한다는 국가주의적 만행임에 비하면 민간 중심의 불매운동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럽고 적절한 대응이다. 하지만 과연 불매운동이 우리의 최종 목표가 될 수 있을까?

  그 의문은 사실 어떤 일본인에게 진 마음의 짐에서 비롯된다. 지난 근현대사는 한일 간의 갈등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연대의 시간이기도 했다. 특히 수많은 일본인이 독립운동가를 변호하던 변호사로서, 일본 정부에 맞서서 강제징용자와 위안부 할머니의 편에 선 사회운동가로서 한국인과 함께 싸웠다. 그들이 옳은 일을 했던 이유는 폭력의 역사를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화해와 공존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목표가 과연 불매와 여행 자제, 문화의 배척 등의 관계의 단절이었을까? 평화를 위한 전쟁이 없듯이, 협력과 화해가 없는 갈등의 해소는 일시적 봉합에 불과하다.

  한일 간 갈등이 나아지기는커녕 악화되기만 하는 지금 상황에서 평화를 향한 양국민의 연대는 어쩌면 이상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이 냉혹할수록 이상은 더욱 명확해야한다. 일제의 침략 야욕이 한반도를 뒤덮던 때도 안중근 의사는 한중일 삼국의 평화와 협력을 바랬다. 그렇기에 그의 저격은 타국과 타민족에 대한 증오를 초월한 의거로 이름남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불매운동이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선 한일 간 평화를 주지하며 시작하고 끝맺어야 한다. 모든 일본제품(日製)이 일본제국(日帝)과 극우주의의 소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723, 주인 없는 물건이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왔다. 일본의 수출 규제도 그 물건이 주인에게 돌아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물건은 바로 대한민국 건국훈장, 그 주인은 핍박받는 조선인을 위해 일제에 저항한 혁명가 가네코 후미코이다. 그의 93주기 추도식을 맞아 그의 후손이 훈장을 그의 무덤이 있는 한국에 기증한 것이다. 스물셋의 나이로 옥사할 때까지 그는 자신의 행동이 설사 죽음을 향한 길이었다고 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그의 희생을 잊지 않으려면, 우리는 책임감을 가지고 불매운동이 일본 혐오로 변질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낙은(문과대 한국사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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