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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성 히어로’에서, 고려대의 대체불가 ‘에이스’로
‘언성 히어로’에서, 고려대의 대체불가 ‘에이스’로
  • 김군찬 기자
  • 승인 2019.09.01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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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그 여름처럼, 올해 대한민국의 6월은 다시 한 번 축구로 물들었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청년들이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FIFA 주관 남자대회 첫 결승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폴란드에서 세웠다. 자랑스러운 선수들의 소속팀 가운데 고려대라는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띈다. U-20 월드컵에서 최준(연세대18, RB) 선수와 함께 대학생 듀오이자 대표팀 주전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한 정호진(사범대 체교18, DMF)이다. 그에게 지난 U-20 월드컵과 다가오는 고연전은 어떤 의미인지 학교 근처 카페에서 들을 수 있었다.

 

U-20 월드컵에서 날개를 펴다

  정호진 선수에게 2019년은 축구 인생 12년 중 가장 빛난 해이다. 지금까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터닝 포인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국민이 관심을 두고 응원했던 U-20 월드컵에서 주전 미드필더로서 결승 진출에 일조하며 축구 팬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화려하게 눈에 띄는 포지션은 아니지만,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왕성한 활동량과 헌신적인 플레이로 대표팀의 언성 히어로(unsung hero, 보이지 않는 영웅)’라는 별명도 얻었다.

  정호진이 사람들에게 주목받은 또 다른 주된 이유는 프로가 아닌 대학생 신분의 아마추어 선수라는 것이다. 대회 이전에 발표됐던 소집 명단에는 다른 대학생 선수들도 꽤 있었지만, 최종 명단에는 고려대의 정호진과 연세대의 최준만 남았다. “대표팀에서 우리가 유일한 대학생이라, 탈락한 다른 대학생 친구들의 몫까지 다 하겠다는 각오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어요. 월드컵에서만큼은 고려대와 연세대의 라이벌 의식은 잠시 접어뒀어요.”

  TV를 통해 경기를 시청한 팬들에게 정호진의 얼굴은 낯익다. 경기 입장 때마다 늘 맨 뒤에 서 있던, 매 경기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에이스이강인(·18)의 앞자리였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떠나가라 애국가를 부르는 이강인의 옆에 선 정호진에게, 자연스레 카메라와 눈길이 집중됐다. “선수마다 루틴이라고 부르는 자신만의 습관이 있어요. 월드컵에서도 선수마다 입장하는 루틴이 있어서 전 항상 강인이 앞, 최준 뒤에 입장한 것뿐인데, 본의 아니게 얼굴을 많이 알리게 된 것 같네요. 하하.”

  대표팀에서 정호진은 자타공인 체력왕이다. 경기당 평균 13km를 뛰어다니는 정호진의 어마무시한 활동량은 산소탱크박지성과도 비견될 정도다. “어렸을 때부터 뛰는 건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어요. 제가 다닌 영등포공고는 확실히 운동량이 많아서, 그 경험 덕에 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고 생각해요.”

  정호진의 본업인 수비진 보호와 1차 빌드업은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역할은 아니다. 하지만 정호진이 경기에서 종종 보여주는 날카로운 공격력은 충분히 팬들의 이목을 끌고도 남았다. “수비하다가 상대의 공을 인터셉트해 공을 가지고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가는 걸 좋아해요. 대표팀에서도 공격에서의 찬스가 생기면 주저하지 말고 확실히 보여주자고 다짐했죠.” 공격본능의 백미는 월드컵 조별예선 3차전 아르헨티나 전이었다. 본선 토너먼트 진출이 걸려있어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경기였다. 그 중요한 순간, 정호진의 발끝에서 대한민국의 두 번째 득점이 터졌다. 적극적인 공격가담으로 조영욱의 두 번째 골을 도왔다. ·현직 고려대 듀오의 합작품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에요. 직접 공을 끌고 돌파해서, 어떻게든 중앙으로 공을 투입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영욱 형이 잘 마무리 해줬죠.”

  월드컵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정호진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응원해주는 팬들이 많이 늘었다. “추계대학축구연맹전이 열린 태백까지 직접 찾아와 선물을 주시는 팬들도 있고, 가끔 교육관에서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대학생의 삶으로 복귀한 만큼, 대표팀 차출로 인해 미처 채우지 못한 학점도 신경 써야했다. “월드컵 일정으로 거의 한 학기 동안 수업을 못 들어가서 보강을 위해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일주일 넘게 수업을 들었어요. 그때는 축구가 아니라 학업에 매진해야 했죠.”

 

누구보다 많이 뛰는 고려대의 캉테

  정호진은 대부분의 선수들과 비슷하게 취미로 공을 차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 재능을 알아본 관계자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선수 반에서 본격적으로 축구를 하게 됐다. 처음부터 지금의 미드필더 포지션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중앙 수비수나 측면 수비수로 자주 뛰었지만, 중학교 입학 후 감독님의 권유로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전향했다.

  청소년 연령별 대표팀에 뽑힌 시기가 19살로 주목받는 타 선수들처럼 이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는 학업을 위해 참가하지 못한 단 한 번의 대표팀 소집을 제외하고 늘 U-20 대표팀의 붙박이 멤버였다. 연령별 대표팀에 선발되는 데 도움을 준 은사는 영등포공고의 김재웅 감독이다. “감독님이 플레이할 때 더 거칠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이는 현재 제 장점이자 무기에요. 3학년 때 이런 능력을 알아봐주신 정정용 감독님이 저를 대표팀에 불러주셨죠. 김재웅 감독님의 조언을 통해 지금 가장 큰 무기가 생겼기 때문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최고의 한해를 보낸 정호진과는 다르게, 소속팀 고려대는 이번 시즌 부진했다. 적은 인원으로 U리그를 비롯한 각종 대회에 나서고 있지만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고연전을 앞둔 정호진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 이유다.

  고려대에서 정호진의 역할은 포메이션에 따라 다르다. 포백에서는 중앙 미드필더, 스리백에서는 스리백의 중앙 수비수 역할을 한다. 고려대는 올해 춘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 스리백 포메이션을 통해 무실점으로 4강까지 진출했다. 오는 고연전에서도 스리백에서의 정호진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스리백에서의 제 포지션은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해요. 절대 실점을 내줘서는 안 되기 때문에 공격보다는 수비에 치중해야 합니다.”

  정호진은 본래 롤모델이 라리가의 명문구단 ‘FC바르셀로나세르히오 부스케츠였지만, 최근에는 프리미어리그 첼시FC’은골로 캉테를 닮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과 잘하는 플레이가 다르다고 생각해서다. 실제로 뛰어난 체력을 활용한 폭넓은 수비와 과감한 전진플레이로 경기장을 휘젓는 정호진의 플레이는 캉테에 더 가깝다. “다른 선수들의 빈자리를 메꿔주고, 또 필요할 때 공격도 나가는 선수를 롤 모델로 삼으려고 합니다. 점점 뛰는 레벨이 올라가다 보니 제가 잘하는 부분을 발전시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활동량, 수비 가담 능력과 같은 부분들을 배우려고 합니다.”

 

어쩌면 마지막 고연전, 뱃노래 준비 완료

  정호진에게 작년 고연전은 뼈아픈 기억이다. 처음 접하는 정기전이다 보니 긴장을 많이 했다. 패배 이후 충격도 오래갔다. “작년 잠실종합운동장의 그라운드 상태가 좋지 않아 고려대의 패스 플레이를 잘 보여주지 못했어요. 선수들도 안정적인 플레이를 하려다 보니 공을 상대 진영에 투입하고 떨어지는 공을 쫓아가는 형국이었거든요. 선제골을 넣었는데도 역전패를 당해 매우 아쉬웠습니다.”

  이번 고연전에서 정호진은 숨겨진 언성 히어로가 아닌, 경기를 지배하는 대체불가 에이스의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 특히 고려대가 정호진에 거는 기대는 몹시 크다. 2015년과 20162년 연속으로 정기전에서 득점하며 정기전의 사나이라고 불렸던 안은산의 7번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고려대 7번은 정말 영광스럽고 무거운 번호예요. 그 때문인지 작년엔 느끼지 못했던 책임감을 올해 많이 느끼고 있어요.”

  정호진 선수가 꼽는 고연전의 중요한 변수는 당일 그라운드에서의 정신력이다. “고연전에서는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말을 해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순간적으로 패닉이 올 수 있어요. 고연전을 경험해보지 못한 선수들과 후배들에게 여러 주의사항과 멘탈관리 방법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올해 정기전이 정호진에게 마지막 고연전이 될 수 있다. 내년에 프로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뛸 겁니다. 작년보다 더 성숙하고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에 이번 고연전 승리를 통해 그 노력의 결실을 맺고 승리의 뱃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정호진은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내년 도쿄 올림픽, 2년 뒤 아시안 게임에서도 대표로 발탁돼 국제무대에서 더 크게 활약하는 것이다. 현재 정호진의 성장세를 보면, 머지않아 꿈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뛰어난 형들과 또래가 많기 때문에 제가 경쟁력을 갖추는 게 우선입니다. 프로에도 진출하고 싶고, 성인 대표팀에도 가고 싶어요. 또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유지하고 싶고요. 일단 올해 고연전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게 가장 큰 꿈입니다.”

 

김군찬 기자 alfa@

사진배수빈 기자 sub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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