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만다는 잠시 남편의 사진을 바라본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심혈을 기울여 이국적인 광경을 사진기에 담는 것은 일상에서 벗어난 황홀함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셔터가 피사체를 담아내는 순간의 장면은 비일상적 체험으로 규정되며 우리에게 행복이나 추억 등의 메타포로 미화되어 다가온다. 그렇기에 사진을 찍는 행위는 참으로 역설적이다. 무한 경쟁의 굴레에서 우리를 위로해 줄 여행사진이 없다면 우리는 어디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언젠가 엄마가 나한테 좋아하는 청년이 없느냐고 물었죠. 내가 그 사람의 사진을 보여준 것 기억 안 나세요?” 경제공황으로 하루아침에 낭만을 잃어버린 로라의 가족은 속세를 떠나버린 아버지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는다. 학창시절 로라의 동반자들은 이미 제 갈 길을 찾아 떠났고 액자 속에 담긴 미화된 기억의 파편만이 남았다. 허나 로라는 꿈을 찾아 열정적으로 달리던 기억을 유리인형들로 만든 동물원에 구속시켜 미련을 극대화한다. 오늘날 청춘들이 취업과 성적 따위의 족쇄에 묶여 현실과 이상 사이의 굵은 선을 긋는 모습이 겹쳐보이는 대목이다.

  “누나 관속에 들어가 못질 당하는 것 쯤 큰 지혜가 필요치 않아. 하지만 못을 하나도 뽑지 않고 관에서 빠져 나올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 수 있어.” 한편 톰과 아만다는 극도로 무기력해진 로라를 돕기 위해 철저히 수단적인 삶을 산다. 신발공장에서 그 누구도 응원하지 않는 문학가로서의 꿈을 펼치며 꿈에 대한 갈망을 놓아버린 거울속의 사람을 자책하며 어두컴컴한 관속에서 몸부림치면서도 현실의 못을 뽑을 용기 없는 두 사람은 그저 못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감는다. 그러나 타인이 부여한 목적에 복무하는 삶은 얼마나 비극적인가. 이상만이 존재하는 천국에서 눈 뜨길 기대하며 관에 몸을 맡겼는데 홀로 걸어 온 길 끝은 공허한 유리인형에 불과하다면.

  [쨍그랑] 날이 갈수록 유리동물원의 인형들은 하나씩 깨진다. 동시에 독자는 완벽한 행복을 보장하는 조건도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남기는 소위 근시안도 모두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기에 꿈을 가진 문제적 개인은 다시 이상을 찾아 나선다. 막다른 길에서 헤매며 그러나 깨진 유리인형들의 자국을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상연을 위한 각서 : 유리동물원은 ‘추억의 극이기 때문에 무대의 제반 약속에 구애받지 않고 한껏 자유롭게 상연할 수 있다] 사회의 제반약속에 구애받지 않고 어서 가시밭의 시작을 알리는 무대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길 빈다. 하루라도 일찍. 그러나 조급하지 말고 천천히.

  "그럼 가거라 달나라에 나가---이 이기주의자 몽상가야"

정찬영 (문과대 영문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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