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중 생명과학대학 교수·생명과학부
김기중 생명과학대학 교수·생명과학부

 

  요즈음 한·일간의 무역전쟁이 한창이다. 다른 각도에서IT 분야의 기술 전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세계를 선도했던 일본의 전자 및IT 기술을 다시 일으키려는 일본의 아베 정권과 현제 세계를 리드하는 우리나라 IT 기술의 충돌로 보는 시각이 그것이다.

과거 세계를 선도하던 일본의IT 기술이 세계소비자들의 요구에 부흥하지 못하고 쇠퇴한 것을 설명하는 용어 중 하나로 ‘갈라파고스화’ 또는 ‘갈라파고스증후군’이 있다. 이 용어는휴대전화 인터넷 망의 개발자인 일본 게이오 대학 나스노 다케시 교수가 2007년 일본 경제가‘갈라파고스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쓰였다고 한다. 그 뜻은 다윈의 진화 이론을 가능하게 하였던 갈라파고스의 고립된 동식물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지금은 고립화 된 기술, 산업, 경제, 사회 등의 현상을 부정적 의미로 설명할 때 흔히 이용하는 용어로 자리잡았다. 

  필자는 매년 2학기면 진화생물학을 강의한다. 수강생들에게 진화생물학을 보다 생생하게 강의하기 위하여 남미의 적도 부근에 위치한 에콰도르령의 갈라파고스제도에 서식하는 동식물을 3회6주간에 걸쳐 탐사한 경험이 있다. 갈라파고스 동식물의 독특한 진화 양상을 직접 관찰하였던 필자는 갈라파고스증후군이란 용어가 부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이 글을 통하여 지적하고자 한다. 

  갈라파고스의 동식물들이 독특한 것은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 제도에 이주한 동식물들이 급변하는 갈라파고스의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결과이지, 고립화 되어 낙오자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갈라파고스의 동식물은 진화과정에서 현재 가장 성공적인 생물들이기 때문에 이 용어가 부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갈라파고스제도는 지구상에 가장 젊은 화산섬들 중 하나이다. 지금도 페르난데스와 같은 북서쪽 적도 지역에 존재하는 섬들은 화산활동이 한창으로 점점 높아지고 있다. 반면에 동남쪽에 분포하는 섬들은 오래된 섬으로 점점 바다 속으로 침강하고 있다. 그러나 오래되었다고 해도 2-3백만년의 연령에 불과하다. 갈라파고스제도를 받치는 지각은 북서쪽에서 형성되면서 높아지고 동남쪽으로 컨베이어 벨트같이 천천히 움직이며 침강하면서 육지에서 사라진다.

  또한 갈라파고스 지역은 3가지 해류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엘니뇨 현상이 발생하는 곳이다. 엘니뇨가 강한 해에는 3-4천mm의 강수량을 보이지만, 정반대의 해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 등 기후 변화가 극심하다. 따라서 극심한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식물, 나아가 이를 먹이사슬로 살아가는 동물들은 육지생물종들에 비하여 훨씬 빠른 속도로 변하여 왔고, 현재도 변하고 있다. 즉 생생한 진화의 실험장이 이곳이다. 

  다윈은 이러한 현상을 노치지 않고 관찰하여 진화 이론의 초석을 다진 것이다. 갈라파고스제도에선 섬마다 껍질 모양이 다른 거대한 육지거북, 육지 토양에 구멍을 뚫고 살면서 번식하는 육지이구아나, 바닷가 암석지대에서 해초를 뜯어먹고 사는 바다이구아나, 날개가 퇴화되어 날지 못하고 눈이 파란 가마우지, 먹이 습성이 다양한 다윈핀치새, 고도에 따라 다르게 적응한 스칼레시아 나무국화 등 셀 수 없을 종도로 독특한 생물 종들과 마주하게 된다. 

  프린스턴 대학의 그랜트 교수 부부는 최근 40여년간 갈라파고스제도의 한 섬에서 다윈핀치새가 어떻게 진화하는지 추적하는 연구를 수행하였다. 이 새의 수명이 5-6년이니 7-8세대 동안 추적한 연구이다. 극심한 가뭄이 들면 초본 식물들이 대부분 씨앗을 못 맺으므로 이를 먹고 사는 대 다수의 핀치새는 죽고, 적응한 목본 식물의 씨앗을 먹는 몇몇 새들만 살아남아 후손을 만들므로, 핀치새의 부리 모양 및 체형이 40년 동안 크게 변했다는 것이 연구의 요지이다. 40년은 우리에게 긴 시간일 지 모르지만 진화의 시간으로 보면 매우 짧은 기간이다. 즉, 40년 7-8세대 동안 크게 변화는 데 수 만년 수 천만년의 시간 속에서 생물 종은 더욱 크게 변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7-8 세대(210-240년) 동안 얼마만큼 큰 기술과 사회의 변화가 있었을지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 시간에 따른 생물 종의 변화를 진화라고 정의한다. 시간에 따라 생물들이 살아가는 환경도 변화하고, 이러한 변화에 적응도가 높은 개체들은 후손을 많이 만들어 번성하고, 적응도가 낮은 개체들은 소멸하는 과정이 진화이다. 생물만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도 소비자의 요구에 부흥하면 흥하고, 적응하지 못하면 망한다. 현대 사회에서 특히 IT 분야에선 소비자의 요구 란 기술적의 혁신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일 경제전쟁에서 우리가 이기기 위해서는 끝임 없는 기술개발과 혁신이 필요하다. 기업뿐 아니라 정치 집단도 유권자인 국민들의 뜻에 부합하지 못하면 사라지고, 국민들의 뜻에 부흥하면 집권하게 되는 것이 진화 측면에서 보는 정치 원리가 아닐까 한다.

  갈라파고스제도는 사람이 거주하는 일부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지역이 동식물의 낙원으로 동물들이 사람을 구경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곳이다. 연구차 무인도에 도착하면 물개, 바다거북, 육지거북, 이구아나, 푸른발부비새, 빨간발부비새, 알바트로스, 군함조, 가마우지 등등 수많은 동물들이 사람 주변을 맴돌면서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구경한다. 사람들이 괴롭히지 않는 한 경계하지도 공격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그저 덩치가 큰 동물 중의 하나일뿐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진화한 이러한 갈라파고스의 동식물들을 보면 우리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인용하는 ‘갈라파고스증후군’이란 부정적 의미의 용어는 잘못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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