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에 참여하고자 중앙광장에 모인 학생 800여 명이 '조국 딸 입시부정 의혹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휴대폰 라이트를 비추고 있다.

  8월 23일 오후 6시 30분 본교 중앙 광장에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딸 입시부정 의혹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1차 고대집회’가 열렸다. 최초 주최자가 불이익을 우려해 주최를 포기하는 등 준비 과정에서 굴곡이 많았으나, 방학 중에도 800여 명이 모였다. 행사 전날인 22일 새벽 집행부가 급히 구성됐지만, 집회에 참여한 교우와 재학생,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도우며 집회를 완성해 나갔다.

 

집회 전날 완성된 ‘번개’ 집행부

  1차 집회의 불씨는 본교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에서 시작됐다. 본인을 이과대 졸업생이자 타 대학 로스쿨생이라고 밝힌 한 교우는 8월 20일 오후 8시 30분 ‘제2의 정유라인 조국 딸 학위취소 촛불집회 제안’이란 투표 글을 올렸다. 해당 글은 집회 찬성 2465표, 반대 128표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에 최초 주최자는 21일 오후 6시 다시 글을 올려 ‘23일 오후 4시 중앙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열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8월 21일 오후 10시 주최자가 주최 포기 선언을 하며 집회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주최자는 ‘로스쿨생 신분으로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자녀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위협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알게 됐다’며 포기 이유를 알렸다.

  이후 몇몇 인물이 집회를 주최하겠다고 나섰다. 일각에서 ‘자유한국당 청년 부대변인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임모 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주최자가 정치 경력이 있으면 집회가 비난받을 수 있다’는 고파스 내 비판 여론을 수렴해 주최 포기 의사를 밝혔다.

  고파스 여론은 집회 주최에 적극적으로 나선 오정근(경영학과 11학번) 교우로 모였다. 8월 21일 오후 11시 오정근 씨가 집회 주최자 직을 맡겠다는 글을 올리며 집회의 주최자가 확정됐다. 8월 22일 새벽 집행부 7명이 모이며 집행부도 완성됐으나 집행부 2명이 정치 경력이 밝혀져 사퇴, 5명의 집행부가 구성됐다. 이후 다시 집행부원 2명을 추가로 모집해 집회 준비에 나섰다. 집행부는 8월 22일 오전 10시에야 직접 만나 회의를 열 수 있었다.

  회의 후 집행부는 8월 22일 오후 2시 30분 열린 임시 중앙운영위원회(의장=김가영, 중운위)에 참석해 서울총학생회(회장=김가영, 서울총학) 측과 입장을 나눴다. 집행부 측은 “현 집행부의 집행 역량이 부족하다”며 “학생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는 만큼 총학이 집회를 주최하길 원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 “총학 측이 참여하지 않아도 집회는 열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서울총학은 집회의 취지에 공감했지만, 중운위 의결을 위한 정족수가 모이지 않아 공식 의결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절차적 정당성’을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참여를 거절했다. 의혹만으로 집회를 여는 것은 성급하다는 일부 중운위원의 반대론도 불참 이유 중 하나였다.

 

문제는 ‘공정’, 800여 재학생과 교우 모여

  서울총학의 공식 참여는 없었지만, 집행부는 8월 23일 본교 중앙광장에서 1차 집회를 열었다. 시작 시간 이전부터 500여 명이 몰려 신원확인에 시간이 지체돼 집회는 30분 늦은 오후 6시 30분에 시작됐다.

  집회는 1부와 2부로 나눠 진행됐다. 집행부원 이일희(보과대 보건정책11) 씨의 입장문 낭독으로 시작된 1부는 △구호 제창 △본관 행진 △학교 측에 요구 사안 전달 등으로 이어졌다. 행진 중 집회 구호인 ‘진상규명 촉구한다 입학처는 각성하라’, ‘정치간섭 배격하고 진상에만 집중하자’를 제창하며 ‘정치 논리에 얽매이지 말고 진상규명에만 집중해 달라’는 요구를 분명히 했다.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한 2부는 자유발언과 응원으로 이뤄졌다. 자유발언대에 오른 학생들은 “인재발굴처가 자유 정의 진리의 무거움을 알아달라”, “지금 직면한 의혹에는 좌우가 없다”, “불공정함에 분노해 이 자리에 나왔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자유발언 중간에 ‘민족의 아리아’, ‘뱃노래’ 등 본교의 응원가와 GOD의 ‘촛불 하나’를 함께 부르며 흥을 돋웠다. 2시간가량 이어진 집회는 오후 8시 30분경 ‘민족의 아리아’를 함께 외치며 끝났다. 500여 명으로 시작한 집회 참여자는 끝날 무렵 800명가량으로 불어났다.

  집회 참가자들은 ‘불공정에 대한 분노’가 참여의 이유라고 입을 모았다. 아직 입시부정 의혹과 관련해 모든 내용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의학 논문 제1저자 등재’, ‘대학생 이상만 참여 가능한 WHO 인턴십 활동’ 등 조국 딸과 관련해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공정치 않다는 것이다. 공과대 18학번인 신모 씨는 “부모의 힘으로 대학을 가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해 참여했다”고 말했다. 박종철(수학과 98학번) 교우는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불공정한 현실에 너무 억울해하고 분노했다”며 “학생들을 위해서 참여했다”고 밝혔다.

  입학처의 책임이 크다는 의견도 있었다. 반차를 내고 왔다는 박주영(중문과 10학번) 교우는 “논문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자기소개서에 나온 스펙 중 석연찮은 부분이 많다”며 “입학 당시 입학처(현 인재발굴처)의 스펙 검증 노력이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부족해도 이해하며…모두가 함께한 집회

  급히 진행된 집회인 만큼, 진행이 매끄럽지는 않았다. 준비한 500개의 피켓은 진작에 다 떨어졌고, 마지막 제창곡으로 정해뒀던 ‘민족의 아리아’가 초반에 잘못 나와 같은 곡을 두 번 부르기도 했다. 앰프 소리가 작아 뒤까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행사 중에 집행부는 연일 “저희가 많이 서투르다,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학우들은 집행부의 서투른 모습에도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지지를 보냈다. 집행부는 36시간 안에 집회를 준비해야 했다. 집행부원 중 시위를 주도한 경험이 있는 인물도 거의 없었다. 또 외부에서 자금을 지원 받았다는 논란을 피하고자 후원금을 받지 않고, 집행부원 사비를 모아 열약한 장비로 집회를 진행해야 했다.

  부족한 부분은 교우와 재학생들이 함께 메꿨다. 참가자들은 집행부의 연이은 실수에도 ‘괜찮아’라고 격려하며 힘을 실어줬다. 급히 열린 집회임에도 많은 교우와 재학생이 참가해 ‘외부인만 참석하는 정치 집회가 될 것’이란 일각의 조롱과 비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총학도 공식 참여는 하지 못했지만, 앰프 등 음향 장비와 집회에 필요한 물품을 대여해줘 힘을 보탰다.

  모자란 인력은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채웠다. 집행부는 고파스를 통해 급히 26명의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려 했지만, 인원 수급이 쉽지 않았다. 이에 집회 당일 현장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아야 했다. 급조된 자원봉사단이지만, 안전 관리와 신분 확인, 피켓 배분 등 집회 전반에 큰 도움을 줬다. 집행부 측은 “자원봉사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행사였다”며 감사를 표했다. 보과대 06학번인 자원봉사자 권모 씨는 “교우, 학생, 집행부, 자원봉사자의 호흡과 역량이 훌륭했다”며 “모든 것이 다 잘된 집회”라고 평했다.

  집회가 끝나고 텅 빈 중앙광장에서 자원봉사자들과 집행부는 동그랗게 둘러서서 간단 한 해산식을 열었다. 각자 간략히 소감을 말한 뒤 서로 큰절을 올렸다. 즉석에서 모인 집 행부, 즉석에서 모인 자원봉사자들인 만큼, 해산식도 짧았다. ‘진상규명’을 외치기 위해 쉼 없이 달려온 집행부와 자원봉사자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며 집회를 끝맺었다.

 

글 | 김보성기자 greentea@

사진 | 양가위기자 fle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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