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달 11일, 감정 프로그램 ‘진품명품’에 독립운동가 이규채 선생의 독립운동 일대기를 기록한 ‘이규채 연보’가 소개됐다. 전문가의 감정 결과, 가격 표시판에는 ‘0원’이 표시됐다.
목숨을 바쳐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의 행적을 돈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2. ‘훈민정음 상주본’을 둘러싼 개인과 국가 간 분쟁이 치열하다. 몇 년간 이어진 소송 끝에 사법부는 그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고 판단했다. 법적으로 훈민정음 상주본은 국가의 소유지만, 이를 보관 중인 점유자는 감정가의 10분의 1인 ‘1000억’을 훈민정음을 내주
는 보상으로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이규채 연보, 훈민정음 등의 고서를 비롯한 문화재들은 매년 2000건 이상 ‘가격표가 붙어’ 활발히 거래된다. ‘월인석보’, ‘경국대전’ 등 국가에서 지정한 보물들이 주요 경매에서 거래되기도 한다. 국보나 보물처럼 국가에서 지정한 문화재라도 개인의 소유가 가능해서, 재산권을 인정하는 헌법정신에 따라 사후 신고만 거친다면 자유로운 거래가 가능한 것이다. 사료적·문화적 가치로 붙은 ‘인식표’가 몇 천만원, 몇 억원 등의 ‘가격표’가 되는 일은 더이상 뉴스거리가 아니다. 누군가는 포기한 문화재의 금전적 평가가, 누군가에겐 받아내야 할 수익처럼 보인다.

  국가 차원에서 서적, 동상, 자기 등의 유물을 ‘문화재’, ‘문화유산’이라 이름붙여 관리하고,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비싼 물품들이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보호돼야 할 필요가 있기때문이다. <문화재 보호법>에서는 법 제정의 목적을 ‘문화재를 보존해 계승하고 국민의 문화적 향상, 인류문화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 명시하고 있다. 가격표가 붙는 것이, 인류문화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이규채 연보’가 0원이라 하고, 누군가는 ‘훈민정음 상주본’이 1000억이라 한다. 그러나 누구도 ‘이규채 연보’가 ‘훈민정음 상주본’보다 가치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금액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유산은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전남혁 시사부장 m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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