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와서 가장 좋았던 점은 수강신청이라는 제도를 통해 내가 과목을 취사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해 들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 이 얼마나 이상적인가. 매체로만 접하던 '교육권'의 실존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수강신청 제도는 완전하지 않다. 내가 듣고 싶은 과목을 고른다고 해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수강신청 하기까지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단 몇초에 판가름 날 뿐이다. 수강신청을 하기 전 역시 과목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강의계획서에 상세하게 수업에 대해 기술돼있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역시 많다.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해도 종이 속 이상과 실제 수업에서의 현실이 극명하게 다른 경우도 부지기수다. 따라서 수강신청을 할 때, 학생들은 주변의 강의평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수강신청 제도의 불완전성을 일차적으로 보완하기 위해 존재하는 제도가 '수강정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강정정은 개강하고 이주도 채 안 되는 기간이다. 과연 그 짧은 기간 동안 우리는 이 수업이 나랑 맞는지, 맞지 않는지 알 수 있을까?

  그래서 드롭제도는 필요하다. 드롭제도는 수강정정기간이 끝난 뒤에 특정 기간을 정해 수강포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학생에게 드롭제도는 배움에 있어 선택의 권리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다. 뒤늦게 알게 된 배우고 싶지 않은 것을 포기할 수 있는. 하지만 본교는 학점세탁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폐지했다. 고려대 학적수업지원팀은 드롭제도 폐지 당시 정정기간을 일주일 늦추고 개강 첫 주 수업을 내실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이것이 후속 조치로서 역할을 다했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선택권을 앗아가고 건넨 보상으로는 지나치게 부실해 보인다.

  최근에는 강사법 시행으로 교수님조차 정해져서 나오지 않는 강의계획서만을 가지고 학생들을 과목을 선택하고 있다. 이처럼 학생들의 권리가 보다 축소된 상황에서, 학생회는 학우들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 드롭제도 부활을 촉구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드롭제도 부활을 반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드롭제도를 이용해 학점세탁을 노리는 학생들의 우선순위는 이미 견고하다. 학점이 배움보다 우선이다. 과연 이 제도 하나만을 없앴다고 해서 그들이 학점을 생각하지 않고 배움을 추구하며 과목을 선택하리라 보는가. 드롭제도를 악용하는 학생들이 제도 하나만을 없앴다고 해서, 그 목적에 맞는 행동을 했을지는 미지수다.

  드롭제도로 나타날 수 있는 일부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학생들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교육권을 제한하는 것은 과연 옳은가? 부작용을 방지라는 목적이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것과 배우고 싶지 않은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앗아가야 할 만큼 절대적 당위성을 지니고 있는가?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우리의 권리는 배우고 싶은 것을 선택할 자유다. 동시에 배우고 싶지 않은 것을 배우지 않을 자유도 가진다. 빼앗긴 자유를 돌려 달라. 우리의 교육권을 보장해 달라. 드롭제도의 부활은 학생으로서 최소한으로 보장받아야 할 우리의 권리를 회복시킬 치트키다. G.브라크는 자유는 쟁취하는 것이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주어졌던 자유를 빼앗겼으니 이제는 쟁취해내야 할 때가 아닐까.

 

박성민(문과대 국문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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