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 한국 수출 규제로 촉발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두 달 넘게 강한 힘을 내고 있다. 유니클로를 비롯한 일본 브랜드들의 매출이 크게 떨어졌으며, 일본 여행객도 감소세를 보이는 중이다. 일본 제품을 취급하지 않는 편의점, 소규모 마트도 점점 느는 추세다. 몇몇 일본식 술집 업주는 손님들의 발길이 줄었다고 어려움을 호소한다. 국내에서 인기를 누리던 일본 상품들이 지속적인 보이콧에 의해 점점 자리를 잃어 가는 형국이다.

  일본 상품을 이용하지 말자는 목소리가 연일 확산되고 있지만 건재함을 뽐내는 일제 문물도 존재한다. 바로 시티팝’(city pop)이다. 유튜브와 음원사이트에는 불매운동이 시작된 이후에도 밤에 듣기 좋은 시티팝’, ‘감성 충만 시티팝같은 제목을 단 선곡 모음이 부지런히 올라온다. 8월만 해도 요다영의 먹구름’, 피넛버터의 도시, ’, 레드벨벳의 ‘Ladies Night’, 런치박스의 지나가요’, 써커스백의 ‘Close to You’ 등 시티팝 형식을 취한 노래가 여럿 발매됐다. 수요와 공급이 모두 활발하다.

  세차게 부는 배척의 바람에도 흔들릴 줄 모르는 시티팝은 1980년을 전후해 발생한 대중음악 양식이다. 사실 특정 장르라기보다 이 무렵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일본에서 성행한 세련된 음악을 두루뭉술하게 일컫는 포괄적 용어에 가깝다. 이 무리에 속하는 곡들은 소프트 록, 어덜트 컨템퍼러리, 스무드 재즈, 컨템퍼러리 R&B 같은 장르를 핵심 성분으로 둔다. 이로써 대부분이 온화한 선율과 잔잔한 리듬을 주되게 내보인다. 시티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도시를 중심 소재로 삼아 이곳에서의 낭만적인 삶을 표하는 가사가 많다.

  한동안 시장에서 사라졌던 시티팝은 지난날의 음악을 그리워한 젊은 밴드들에 의해 2010년대 중반쯤 부활의 조짐을 나타냈다. 이 분위기를 포착해 우리나라 가수들도 시티팝 노래를 속속 내놓기 시작했다. 이어 네이버에서 과거 한국에 존재했던 시티팝 스타일의 노래를 발굴, 조명하는 사업을 벌여 시티팝은 음악팬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갔다. 결정적으로 젊은 세대가 오래된 것을 오히려 신선하게 여겨 관심을 갖고 향유하는 뉴트로 경향에 힘입어 시티팝은 대세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아 듣긴 해도 불매운동을 의식해 시티팝을 평소처럼 마음 놓고 즐기기가 조심스럽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불매운동과 마찬가지로 시티팝 노래를 청취하든가 배격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다. 아무리 숭고한 일이라고 해도 이런 민간 활동은 자발적으로 벌여야 의미가 있다. 애국심의 강요는 파시즘과 다를 바 없다.

  다만 현재의 상황 이전부터 음악인들이 시티팝을 쏟아 내는 모습은 불편하고 씁쓸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대중음악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많은 가수가 일본 노래와 가수를 모방했다.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의상, , 심지어 멤버 구성까지 따라 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한국 대중음악, 특히 댄스음악과 아이돌 산업은 철저히 일본에 빚을 지고 있다. 이 부끄러운 역사를 잊은 채 정성스럽게 일본산 음악을 복원하고 있으니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시티팝을 표방한 다수의 노래가 음반 커버나 뮤직비디오에 19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을 흉내 낸 그림을 내건다. 시티팝이 일본에서 생겨났기에 그 나라의 느낌을 내기 위함이다. 이렇게 시티팝은 시각적으로도 일본을 되새긴다. 근래의 시티팝 유행은 가요계에 일본 문화를 숭배하는 태도가 만연함을 보여 준다. 주체성 확립과 창의성 확보가 절실하다.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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