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정기고연전 전날에 고려대 본관에 연세대 교기가 걸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1973년 정기고연전 전날에 고려대 본관에 연세대 교기가 걸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1973104일은 정기고연전 하루 전날이었다. 당시 나는 사학과 1학년생으로 고대신문 기자였다. 다음날 열리는 정기전을 앞두고 웬만한 기사는 마감해야 했기에 이날 오전 950분께 출입처인 아세아문제연구소(아연)로 가는 중이었다. 아연은 평소 별다른 기사가 없지만 이날은 단신이라도 챙겨야 했다.

 아연을 가기 위해서는 본관 뒤쪽 오솔길을 거쳐야 한다. 당시는 지금의 다람쥐길처럼 포장된 길이 아닌, 두 사람이 겨우 다닐만한 좁은 산길이었다. 오솔길을 걷다 힐끗 본관 옥상을 쳐다봤다. 그런데, 우리 교기가 휘날려야 할 옥상 게양대에 고려대 교기 대신 연세대 교기가 펄럭이지 않은가? “, 이상한데? 뭐지?”

 당연히 기자정신이 번뜩여야 할 순간이었지만, 정기전을 처음 치르는 신입생이어서 , 정기전 하루 전엔 양교 교기를 바꿔 게양하는 좋은 전통이 있는가 보네~”라는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하며 지나치고 말았다.

 그런데 아연에 갔다가 고대신문 편집실로 돌아오니, 학교 전체가 난리가 났다고 이강식 편집국장(사회71) 등 선배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연대생들이 이날 아침 일찍 옥상으로 침입해 우리 교기를 내리고 자기네 교기를 대신 달았다고 하지 않은가!

 “아니, 이럴수가~” 나는 우두망찰하고 말았다. 본관 옥상의 연세대 교기를 발견 즉시, 편집국장에게 보고하고 사진을 찍어 뒀더라면 고대신문 사상 최고의 특종을 낚은 것은 물론, 이 증거물을 제시해 연세대에 사과를 받을 수 있었을텐데... 나는 문책이 두려워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본관 옥상의 장면을 목격하고도 편집국장에게 보고하지 않은 걸 실토했다면, 나는 천하의 웃음거리가 됐을 터였다. 지금이라면 핸드폰으로 사진이나마 찍어 뒀을건데, 그냥 지나쳤으니 옥상의 연세대 교기 게양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고, 이제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연대생들은 우리 교기를 빼앗아 기선을 제압하며, 정기전 승부를 자기네 쪽으로 돌리려 했지만 결과는 41패의 고대 쾌승으로 끝났다. 정기전 참패에 화가 난 연대생 수 백명은 당시 박대선 총장실로 항의 방문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로부터 거의 반세기가 지난 2019219일에 염재호 총장이 퇴임을 앞두고 동기인 73학번 교우임원 20여명을 오찬에 초대했다. 이때 나는 73골프회 회장 자격으로 참석을 했다. 오찬 장소는 본관 4층의 프레지던트 챔버’. 맛있는 식사와 즐거운 환담을 나누고 헤어지려는데 염 총장이 옥상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한다. 다들 옥상 구경은 처음이어서 흔쾌한 기분으로 올라갔는데 옥상으로 가는 출입구가 자물쇠로 2, 3중으로 잠겨있었다. 당직실의 직원이 호출돼 한참을 열어서야 옥상으로 가는 문이 개방됐다. 그렇게 73동기들과 본관 옥상에 올라가니 1973년 고연전 전날에 연세대 교기가 걸린 사건이 또렷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옥상 출입문이 본관 건립후 줄곧 개방돼 누구든 올라갈수 있었으나 교기 탈취 사건후 잠금 장치를 단단히 한 것.

 지난 816, 이 기사를 쓰기 위해 확인차 다시 한번 본관 옥상에 올랐다. 이날은 본관을 방문해 총무부를 통해 당직실 직원과 함께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2, 3중의 자물쇠가 없었다. “왜지? 이러면 46년전처럼 연대생들이 쳐들어 올수 있는데...” 직원의 답은 문을 잠궈 두면 소방법에 걸려 지난 봄에 열쇠 뭉치를 풀었다고 한다.

 자, 이젠 옥상으로 아무나 올라갈수 있게 됐다. 그러면 46년전의 교기 바꿔달기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 본관에 들어가면 안내데스크의 직원이 출입자를 일일이 체크하기 때문이다.

 

김수인(사학과 73학번) 스포츠 칼럼니스트
김수인(사학과 73학번) 스포츠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