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우 동국대 교수·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장영우
동국대 교수·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우리나라에서 작가로 살아가려면 등단이라는 특별한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문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알고 있을 신춘문예제도가 가장 대표적인데, 이 관문은 최소 수백 명의 고수와 경쟁해야 통과할 수 있다. 중앙의 유수한 문예지 신인 등단제도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대부분 한 명만 뽑는 소설 부문에 응모하는 작품은 대략 수백 편에서 천 편을 상회하기 때문이다.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 등단은 대단한 영예와 명성을 선물한다. 당선자는 새해 첫날 아침 신문에 작품과 인터뷰, 사진이 실리고, 그의 작품은 등단을 꿈꾸는 문학도에서부터 기성 문인과 평론가, 잡지 편집자 등 문학 관련 종사자들이 정독한다. 그는 단숨에 한국문학의 신성(新星)으로 주목받는 것이다. 때로는 문예지로 등단하는 게 세간과 문단의 더 큰 관심을 받은 경우도 적지 않다.

  문학도의 가장 큰 소망은 아마도 등단일 테지만, 그 고비를 넘어선 뒤에 작가로 살아남는 게 더욱 지난한 일이란 건 잘 모른다. 등단은 그저 작가 자격증일 뿐, 그 자체가 작가로서의 능력과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별다른 작품활동을 하지 못하고 사라진 샛별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문예지 편집자에게 청탁 한 번 받지 못한 신인은 물론, 용케 한두 번 청탁을 받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나는 이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작가로 등단하는 이가 1년에 대략 3050명 정도 된다면, 510년 후에도 작가로 활동하는 이는 2030% 내외에 불과하다. 그리고 평생 글만 쓰며 살아가는 전업 작가의 길은 더 험난하고 고달프다. 원고료만으로는 기초생활도 어렵고, 여유 있는 생활을 누리려면 글 쓰는 것 외의 다른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해방 이후 전업 작가로 살다 돌아가신 이들은 박완서이청준이문구최인호 등 손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신인 작가를 힘들게 하는 요인은 문학권 내부에도 존재한다. 신춘문예에 등단한 기쁨이 채 식기도 전에 신인 작가는 유수한 출판사 편집자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는다. “당신의 첫 작품집을 우리 출판사에서 내주겠다.” 기쁘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인을 한 그에게 다른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다. “당신의 첫 장편소설을 우리가 내주마”. 그리고 얼마 뒤 또 다른 유혹을 받는다. “우리는 당신의 두 번째 창작집 혹은 장편소설과 계약하겠다.” 이렇게 해서 적게는 한 권에서 많게는 서너 권의 작품집 출판 계약을 맺은 신인 작가는 문득 두려워진다. “이걸 언제 다 쓰지?” 그들과의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 그는 10년 이상 글만 써야 한다. 그것이 그가 소망했던 작가로서의 삶이라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이 출판사의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닫게 된다. 그렇게 해서라도 열심히 좋은 작품 쓰고 유명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것이 왜 문제냐 할지 모르나, 거기에는 출판사의 교묘한 자본 논리가 숨겨져 있다. 그들은 경쟁출판사보다 빨리 유리한 계약을 맺어 연고권을 확보하려는 욕심뿐 정작 신인의 미래에는 큰 관심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작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출판사에서 작품집을 내야 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 출판사는 문예지를 발간하고 다수의 문예상을 운영하며 문학 관계자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해 문학 권력이란 말을 듣는다.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작품 청탁도 받고, 책을 출간할 수 있으며, 적지 않은 상금이 뒤따르는 상도 받게 된다. 신인이 등단해 이런저런 모임에 초대받아 다니며 제일 먼저 터득하는 것이 바로 그런 문단의 풍토다.

  일부에서는 신인 등단이나 문학상 수상자 선정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그들 작품이 최고냐 하는 점에는 상이한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등단 혹은 문학상 수상작으로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제출되지 않는다. 천 편 가까운 작품을 여러 사람이 짧은 시간에 심사해 최고의 작품을 가려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투고된 모든 작품을 읽기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뿐 아니라 심사자의 문학적 성향과 가치관이 달라 의견을 종합하기가 결코 용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상 수상자 선정과 관련한 소문도 그렇다. 문학상 수상자는, 짧게는 10여 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작품을 발표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동안 그의 작품은 여러 경로를 통해 문학성을 입증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여러 문학상을 받는 게 문제일 수 있지만, 그만큼 뛰어난 작품을 발표했기 때문이란 반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글만 쓰며 살아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원고료가 형편없고, 글 청탁도 많지 않다. 원고료나 인세로만 살아가려면 최소한 20년 이상 작품을 써서 책도 여러 권 출판하여 베스트셀러도 되고 문학상도 많이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열심히 읽고(多讀) 생각하고(多想量) (多作) 뒤 고치는(推敲) 일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작가가 되기는 어렵지만, 열심히 노력해 기회가 닿으면 등단할 기회는 많다. 하지만 좋은 작가로 활동하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박완서는 40세에 등단하여 81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부단히 작품을 발표해 한국 최고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작가가 되려는 이들은 그를 거울삼아, “나는 왜, 어떤 문학을 할 것인가?”를 화두로 삼아 평생 정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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