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 작가는 '글을 쓰는 순간 모두가 작가'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작가 지망생들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여유를 갖길 당부했다.
박상영 작가는 '글을 쓰는 순간 모두가 작가'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작가 지망생들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여유를 갖길 당부했다.

 

영 씨는, 내가 어떤 세상을 살아왔는지 상상도 못할 거예요.”

그러는 당신도 내 세상을 알지 못하잖아요.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2019년 젊은 작가상 대상작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은 지극히 평범한 동성애자의 사랑과 실패를 재치 있게 그려냈다. 단지 글 쓰는 상태를 사랑한다는 그. 인물이 살아 숨 쉬도록 치열하게 글자를 써 내려가는 그는 오늘날 글을 멀리하는 세대라 불리는 우리에게 소설의 참맛을 알려준다. 신인 작가 박상영의 대학 시절부터 작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창작 과정에서의 치열한 고민을 글 속에 소소히 담았다.

 

- 등단 후 3년이 지났습니다

 “등단했을 당시에는 카드빚에 시달리며 채권추심 전화를 받고 있었어요. 그 때문에 투잡을 하며 직장생활과 창작활동을 병행하느라 몹시 힘들었습니다. 결국 창작에 온전히 시간을 몰두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었죠. 그러나 <대도시의 사랑법>이 나온 후로는 여러 홍보 활동에 매진하느라 오히려 직장 다닐 때보다 더욱 바빠졌어요. 막상 글 쓸 시간이 나지 않아 심적인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을 정도랍니다.”

 

- 어떤 대학시절을 보냈나요

 “열심히 취재 활동을 하는 학생기자였고, 평범한 언론고시생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라운지에 모여 한국어능력시험 스터디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여러 기업에서 주최하는 대외활동 프로그램이나 인턴십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편이었고요. 술을 미친 듯이 마시고 연애도 끊임없이 하고, 또 그러다 살이 찌면 미친 듯이 운동을 하고 굶기도 하고. 그때는 단 몇 주만 노력해도 살이 쭉쭉 잘 빠졌습니다. 지금은(웃음). 젊음이 주는 모든 혜택을 과도히 누린, 뭐랄까, 정열과 광기의 시간이었습니다. 돌이켜보니 너무 아름다운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 소설을 쓰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중학교부터 대학교 때까지 쭉 교지편집부의 기자로 활동해왔죠. 실제로 대학을 졸업하고 한 잡지사에서 편집자로 근무를 했어요. 하지만 글을 쓰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내가 쓰는 글이 결코 나의 글이 아니라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결국에는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정말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나만의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2012년 하반기부터 사설 아카데미에 다니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소설 쓰는 것이 정말 제가 꿈꿔왔던 글쓰기의 형태더라고요. 인생을 걸고 하고 싶은 직업이라는 것을 깨닫고, 배수의 진을 치는 마음으로 문예창작과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지요.”

 

- 소설 스타일은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해왔나요

 “처음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땐 사실 문체라고 할 것도 없었고, 직장 내 괴롭힘 문제나 연인 간의 갈등과 같은 제 일상의 소재들을 분노에 가득 차 쏟아내는 수준이었습니다. 문장도 엉망이었죠. 소설 아카데미에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스터디를 꾸려 서로의 글을 읽고, 이를 객관화하는 시간을 통해 글이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오직 내 안에 갇혀 있던 문장들을 타인의 시선을 통해 보는 체험을 하는 것이 작법상의 발전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성숙에도 도움을 준 것 같아요. 글을 쓰고 그 글이 읽히는 과정을 통해 괴로웠던 시절의 기억들을 조금은 담담히 볼 수 있게 되었답니다.”

 

- 글 쓰는 속도가 비교적 느린 편이라 들었습니다

 “하얀 종이에 글씨를 채워 나가는 것 자체가 사실은 매우 고된 노동이지요. 창작 자체가 주는 고통이 큰 것 같습니다. 고뇌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자연히 창작에 걸리는 시간도 늘어나는 것 같아요. 또 어떤 인물을 재현할 때 그 인물이 납작해지지 않게, 살아 숨 쉬는 사람이 되도록 최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입체적으로 그리기 위해서도 오랫동안 연구합니다. 그것이 제가 소설을 쓸 때 가지는 거의 유일한 윤리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 퀴어, 인스타 중독, 성도착증 환자 등 색다른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어왔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등단하기 전에는 아무래도 제가 쓰는 글이 수백 수천 편 사이에서 뽑혀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그래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인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첫 작품집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보면 이런 습작기 특유의 인정 욕구랄까 경쟁에 대한 압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지금 보면 다소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이젠 글을 쓸 때 뭔가 대단히 특별한 어떤 것을 써야 한다는 강박은 없어요. 뭔가 엄청나게 독특한 소재를 발굴하겠다는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글을 쓸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제게 가장 절박하고 중요한 문제를 가장 정확하게 다루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한편, 제게 있어 퀴어라는 소재는 별로 특별하거나 특이하게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일부 평론가들이나 독자들이 그와 같은 것들을 유별나게 받아들이거나 대단히 특별한 것으로 소비할 때 다소 당황하기도 했죠. 물론 독자들의 반응이 가지각색이긴 하더라고요. 모든 피드백은 독자의 영역인 만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반응 모두를 존중하지만, 소수자라고 밝힌 분들이 마치 자신의 얘기를 대신 써준 것만 같았다’, ‘공감이 많이 됐다는 말씀을 해주실 때 특히 기뻤습니다.”

 

- 소설에 자전적 요소를 다소 반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 책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에 등장하는 박소라<우럭 한 점 우주의 맛>과 같은 인물을 보고 마치 저와 11인 것처럼 생각해주시는 독자 분들이 많으세요. 그런데 그 두 인물 개개인은 사실 자연인 박상영과는 아주 다른 가공의 인물이에요. 인물들이 처한 환경도 저와는 다르고, 그들이 겪는 에피소드도 제 자신의 경험과 다를 때가 많죠.

하지만 결국 소설 속엔 자연히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기 마련인 것 같아요. 제 생각, 저를 둘러싼 분위기들이 소설 속에 재현되는 건 흔한 일이죠. 또 소설 속 인물들의 문제를 쓰는 것만으로도 저 자신에게 중요했던 어떤 문제들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어, 글을 쓰는 제게는 늘 큰 위안이 되죠. 제가 쓴 소설의 모든 인물과 에피소드에 저의 작은 조각들이 골고루 뿌려져 있는 것 같아요.”

 

- 작가 지망생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당장은 조급한 마음이 들 수 있고, 등단 혹은 출판이라는 관문에 질려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저 역시도 신인 작가에 불과하지만, 작가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들과는 달리 순간마다 또 작품마다 새롭게 평가받고 또 계속해서 새로운 관문을 통과하고 자기 갱신을 해야 하는 직업인 것 같습니다. ‘쓰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단지 글을 쓰는 상태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직업이기도 하고요.

 조바심이 드는 게 너무 당연하지만, 정말이지 멀고 길게 봐야 하는 것 같아요. 실은 모든 작가 지망생들은 글을 쓰는 순간 이미 작가입니다. 지금 겪는 어려움이나 모든 고민이 자신을 더 나은 작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여유를 가지세요. 계속 글을 써나가면 언젠간 원하는 목표를 꼭 이루지 않을까요? 함께 오래 써나가요(웃음).”

 

- 작가 생활을 하며 도달하고 싶은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다른 거창한 목표는 없지만, 지금처럼 계속해서 창작활동을 하면서 죽을 때까지 글을 쓰며 살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꿈꿀 수 있는 가장 크고도 아름다운 꿈이랍니다.”

 

최현슬 기자 purinl@

사진제공 | 박상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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