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은 공간의 세계란다.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가지 생각하며 찍어가는 점. 어쩌면 내 마음속을 잘 말해주는 것일까.”

  화가 김환기의 마지막 활동 시기인 뉴욕 생활은 치열했다. 현대미술의 중심지였던 뉴욕에서 김환기는 해외의 쟁쟁한 예술가들과 경쟁해야 했다. 김환기는 고향을 떠나 세계무대에서 자신의 새로운 스타일을 찾고자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험했다.

  환기미술관은 이런 김환기의 예술 세계를 기념하기 위해 1992년 건립됐다. 산자락에 오밀조밀하게 모인 주택들이 아름다운 부암동의 이 소박한 미술관에는, 하얀 벽돌 담장과 함께 여름이 지난 사이 더 수북이 자란 담쟁이가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어렵사리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 돌계단에 올라서면, 아트숍 옆으로 건물 크기와 어울리지 않는 자그마한 마당과 화강암 외벽으로 된 미술관 본관이 보인다. 화려하지 않지만, 산기슭에 얹혀있는 듯한 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일을 하며 음악을 들으며 간혹 울 때가 있다. 음악, 문학, 무용도 사람을 울리는데, 울리는 미술은 못 할 것인가.”

  결국 김환기의 예술적 시도는 뉴욕에서 결실을 본다. 파리와 서울에서 그는 한국적 특색이 짙게 나타나는 자연물을 본뜬 추상화를 주로 그렸지만, 뉴욕에서는 그의 가장 유명한 추상화 화풍인 전면점화에 정착하게 된다. 2m가 넘는 화폭을 꽉 채우도록 수많은 점을 찍은 김환기의 그림은 더욱더 보편적이고 내밀한 서정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환기미술관 김경희 학예사는 전면점화가 탄생하기까지 구도에 대한 김환기 화가의 지속적인 실험의 과정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점 하나에 김 화가의 평생을 아우르는 예술적 감각과 심미적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물감의 번짐을 활용해 점화에서도 한국적 서정성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환기미술관에서는 김환기 화가의 작품과 생전 자료에 기반한 다양한 기획을 통해 그의 예술 세계를 지속해서 조명하고 있다. 본관 옆 수향산방에서는 뉴욕 시절 김환기가 쓴 편지와 일기, 당시 그린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매일 화가가 한두 줄씩 적어낸 일기에는 작품을 향한 화가의 치열한 고민과 함께 오랜 타지 생활에서 느낀 솔직한 심정이 담겨있다.

  길었던 여름이 가고 어느덧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며 곳곳에 묻은 더위를 씻겨낸다. 한 해의 마무리를 준비할 때라고 누군가는 말하는데, 고즈넉한 부암동에서 김환기가 예술 세계의 마침표를 찍었던 뉴욕 시기 자취를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이정환 기자 ec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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