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주관 연수로 영국 맨체스터의 한 중등학교에서 7주 동안 수업실습을 했다. 감사하게도 대부분의 과목을 참관할 수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 영국교육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옥스브리지로 대변되는 엘리트 교육의 산실. 하지만 기대를 너무 많이 한 탓인지 실망도 컸다. 요즘 한국교육에서 강조하는 학생활동 중심의 협동학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과거 한국의 교실
처럼 교사가 강의하면 학생들은 교사의 필기를 받아적기에 바빴다.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는 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교육에서 인상적이었던 점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영국학생들은 매 시간마다 글쓰기에 바빴다. 글씨가 악필인 학생은 노트북을 이용해서라도 노트필기를 했다. 8학년 역사수업 시간이었다. 학생들은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공책 맨 위에 오늘 날짜와 수업목표를 적었다. 주제는 ‘히틀러가 어떻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 있었나’였다. 학생들은 칠판에 제시된 4개의 보기 중 하나를 골라 히틀러가 힘을 얻게 된 이유를 공책에 적었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에 대해 한 시간 동안 깊이 있게 생각하고 본인들의 의견을 한 문단 정도 글로 쓰고 발표했다. 지리학, 과학 수업시간에도 주어진 자료를 활용하여 과학적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글로 적어야했다. 글쓰기에 수업시간의 절반을 할애했다.

  매시간마다 '쓰기(writing)'가 중요한 이유는 GCSE(영국의 중등교육자격시험) 때문이다. 한국의 수능과 같은 시험인 GCSE의 시험유형은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 서술형이다. 교사들은 평상시에 GCSE에서 유리한 개요에 따라 글을 쓰도록 강조했다. 각 과목마다 선호하는 글의 구조가 따로 있어 학생들은 그에 맞도록 글을 썼다. 스펠링과 알아볼 수 있는 글씨도 필수사항이다. 만약 GCSE가 한국의 수능처럼 객관식이었다면 영국의 교육방식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영국과 한국의 학생 모두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방법이 달랐을 뿐이다. 평가(assessment)는 교육의 질과 방식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하다. 하나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글로 표현하는 학생. 수능 1등급을 위해 방대한 양의 EBS 문제를 풀고 맞히는 것을 훈련하는 학생. 2015개정 교육과정의 목표인 창의융합형 인재는 전자가 더 가까워 보인다. 시험이 없다면 공부할 이유가 없다는 우리반 학생들을 보면서 평가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그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도구로 활용될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고 있다. 생각의 뼈대를 세우는 영국의 글쓰기 평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볼까 한다.

<B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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