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4 16:41 (수)
피후견인의 ‘대리’가 아닌 의사결정 ‘지원’으로 나아가야
피후견인의 ‘대리’가 아닌 의사결정 ‘지원’으로 나아가야
  • 박성수 기자
  • 승인 2019.09.22 16: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년후견제도 시행 7년차

 

 588843명과 748945. 각각 작년 기준 지적, 뇌 병변, 자폐성, 정신 장애인 수와 65세 이상 치매환자의 수다. 130만이 넘는 수의 사람들이 주변의 관심을 필요로 하고 있다. 민법에서는 이들이 사회에 어울려 스스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년후견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성년후견제도의 기본 취지는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후견인을 선정해 그들을 지원하게끔 하는 것이지만,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대리가 아닌 자기결정권 존중

 20137월 도입된 성년후견제도는 금치산·한정치산제도를 폐지하고 만들어졌다.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한 사람의 행위 제한이 핵심이었던 금치산·한정치산제도와 달리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한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 존중, 정상화 원칙(지역 사회 내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하는 것) 등을 중시하는 특징이 있다. 여기에는 장애인이 모든 영역에서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취지의 UN장애인권리협약 제12조가 배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협약이 세계적 기준이 되며 국내에서도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한 것이다.

 금치산·한정치산제도는 보호가 필요한 대상을 무능력자로 규정하고 그들의 재산관리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단법인 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 이충희 사무총장은 금치산·한정치산제도는 사람마다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행위 능력을 제한했다개인의 잔존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한 사람보다는 그 사람이 소유한 재산을 보호하는 측면이 강했다고 덧붙였다.

 성년후견제도는 일괄적으로 대상자의 행위능력을 제한하는 금치산·한정치산제도와 달리 개인마다 다른 잔존능력의 활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잔존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피후견인 의사능력의 정도에 따라 필요한 범위 내에서 후견 유형을 탄력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성년후견제도의 유형은 후견을 맺는 방식에 따라 법정후견과 임의후견으로 나뉜다. 법정후견은 피후견인 본인, 배우자, 친족, 지방자치단체의 장, 검사 등의 청구에 따라 법원에 후견개시심판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후견개시심판이 확정된 시점부터 그 효력을 가진다. 임의후견은 본인이 미리 의사결정능력의 상실을 대비해 계약을 통해 직접 후견인을 선정해두는 방식으로 가정법원이 후견인을 감독하는 후견감독인을 선임한 시점부터 효력이 생긴다.

 법정후견은 후견 대상과 후견인의 권한에 따라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으로 분류된다. 성년후견은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에게 후견인이 포괄적인 대리권을 가지며, 한정후견은 그러한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법원이 정해둔 범위 내에서 후견인이 대리권을 가진다. 특정후견은 일시적 후원 또는 특정사무 후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간이나 범위가 특정된 사무에 관해서만 후견인이 대리권을 가진다. 피후견인에 대한 후견인의 대리권은 성년후견에서 특정후견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셈이다. 임의후견은 미리 정해둔 계약 내용에 따라 후견인의 업무 범위가 달라지는데, 법원이 아닌 본인이 직접 대리권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후견제도 빈틈엔 국가가 나서야

 후견인은 친족이 선임되는 게 일반적이다. 재산을 둘러싼 자식들의 갈등과 같은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굳이 제3자를 후견인으로 선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전 서울가정법원 판사였던 법무법인 율촌 김성우 변호사가 2016년 발표한 성년후견제도의 현황과 과제에 따르면 2013731일부터 2016531일까지 선임된 후견인의 84.6%가 친족이다.

 친족후견인은 일반적으로 피후견인을 잘 이해하고 그들과 친밀감을 형성하고 있다는 큰 장점을 지닌다. 하지만, 전문가에 비해 법률 업무에 미숙하고 후견인으로서 역할을 자각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김성우 변호사는 친족후견인은 피후견인과 유대감이 높아 그들이 원하는 바를 잘 알 수 있다반대로 친족이라는 점이 후견인의 지위나 의무를 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후견의 개시 과정은 크게 <후견개시심판청구-후견개시심판-법원의 후견감독 개시>로 이뤄진다. 본인, 배우자, 친족,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검사 등이 후견개시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데, 이때 신청인의 청구권뿐 아니라 취하권 역시 자유롭게 보장된다. 후견이 개시되기 전까지는 신청인의 취하에 따라 언제라도 후견신청이 취소될 수 있다. 이런 권한이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때도 있다. 원하는 대로 후견인이나 후견 유형이 선택되지 않아 후견 취하를 하는 경우에 피후견인에 대한 보호 공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충희 사무총장은 피후견인에 대한 보호 공백이 발생하지 않게 청구인의 무분별한 취하를 방지하는 입법이 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후견인이 되는데 실패한 피후견인의 먼 친족이 피후견인의 가까운 친족을 통해 후견청구 취하를 하고, 이후 항고와 재항고를 거쳐 후견인 선임에 대한 법원의 심판이 확정되는 1년 동안 피후견인 보호에 대한 공백이 발생해 피후견인이 사망한 사례가 있다.)

 실제로 후견취하를 법원의 허가를 받은 뒤 가능케 하는 가사소송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다만, 개정안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권리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마냥 옳지는 않다는 것이다. 배광열 변호사는 단순히 신청인의 취하 권리를 제한하는 건 옳지 않다법원과 행정부가 서로 유기적 관계를 구성해 보호공백이 발생하는 경우에 대해서만 검찰이나 지방자치단체의 후견청구를 유도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후견제도의 최후의 보루는 국가이므로 보호 공백에 빠지는 사람에 대해선 국가가 책임지고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는 의사결정지원으로

 도입 7년 차지만, 성년후견제도의 이용률은 저조한 상황이다. 대법원이 발표한 ‘2019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8년 법원에 접수된 미성년후견을 제외한 후견개시청구는 총 7204건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홍보 부족과 제도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저조한 이용률의 주원인으로 꼽는다. 박인환(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도 시행을 주도할 정부 부처가 분명하지 않다제도에 대한 홍보는 물론 그 시행에 필요한 제도적, 인적, 물적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김성우 변호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가족 문제에 법원이나 법률이 개입하는 것에 난감을 표한다라며 사회적으로 낙인을 찍는 한정치산제도의 후신이라는 인식 때문에 이용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성년후견제도의 4가지 유형 중 성년후견 유형에 편중된 이용현황이 의사결정을 지원한다는 제도의 본래 취지와 어긋난다는 목소리도 크다. 법정후견 중에서도 성년후견이 피후견인의 권리를 가장 깊게 제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87204건의 후견개시청구 중 성년후견 유형은 5927건으로 미성년후견을 제외한 전체 후견접수건의 약 82%에 달한다. 법원은 피후견인의 상태를 고려해 필요하다면 청구인에게 후견 유형을 변경하라고 요구할 수 있지만, 강제적인 조치는 아니다. 김성우 변호사는 성년후견은 코마 상태이거나 질병의 말기에 접어들어 전혀 의사표시가 불가능한 사람에게 적합하다의사표시가 조금이라도 가능하다면 한정후견을 이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성년후견제도의 유형 중 자기결정권 존중과 의사결정 지원이라는 제도의 도입 취지를 가장 잘 충족하는 유형은 임의후견이다. 피후견인 본인이 직접 후견인을 선정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8년 법원에 접수된 임의후견개시청구는 15건으로 다른 유형에 비해 매우 적었다. 복잡한 후견계약 과정과 후견감독인을 필수로 선임해야 한다는 점이 이용에 방해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제철웅(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의후견은 사적 자치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며 하지만 공정증서를 작성해야하고, 후견감독인 선임이 필수라는 점이 비용적 부담으로 이어져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지 않은 사람들이 이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후견감독인의 보수는 피후견인의 재산에서 지급되기에 후견감독인 선임이 필수인 임의후견은 부담이 더욱 가중되는 것이다.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도입 배경으로 작용한 UN장애인권리협약의 취지에 성년후견제도가 실상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전문가들은 의사결정지원제도가 성년후견제도의 다음 모델이라고 입을 모은다. 제철웅 교수는 발달장애인이나 치매노인을 대상으로 특정 사무에 대해서만 대리권을 가지는 특정후견을 원칙으로 하는 공공후견사업의 사례처럼 후견제도가 의사결정지원제도에 근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인환 교수도 성년후견제도는 의사결정지원제도로의 전면적 개혁이 필요하다후견인이 법정대리권을 가진다 하더라도 언제나 피후견인의 결정과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수 기자 park@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