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세운상가 골목은 여전히 전자제품들로 가득하다. 전자상가 골목이 만들어 내는 칙칙함도 요즘은 힙지로열풍에 한몫을 한다. 좁은 1층 골목을 벗어나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줄을 서야 하는 반지르르한 카페와 맛집이 보인다. 허나 진정한 힙지로열풍을 느껴보고 싶어 시선을 돌리면, ‘커피 숍간판 스티커가 살짝 떨어진 다방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뭐 드릴까? 냉커피 시원한데.” ‘솔다방을 운영하는 김해영(·60) 씨가 달콤한 향 을 뿜는 커피를 만들기 시작한다. 정겨운 다방커피 한 잔에는 올드팝이 제격이다. 곳곳의 선풍기와 실링팬이 돌아가며 잔잔히 더위를 식혀준다. 넓은 3인석 소파에는 노인들이 둘러앉아 미숫가루 한 잔에 세상 이야기를 담는다. 옆자리 학생들은 벽에 붙어있는 20세기 포스터들이 신기한 듯 이리저리 곳곳을 살핀다.

 “내가 30년 동안 커피를 탔는데 맛이 당연히 다르지요. 미숫가루, 오디주스 겨울엔 쌍화차가 따뜻하니 좋지!” 깊은 향이 나는 커피는 진한 맛이 일품이다. 나오기 전 마시는 결명자차는 담백하다. 그가 만드는 음료엔 세운상가의 역사가 녹아있다. “예전엔 너무 바빠서 밥 먹을 시간도 없었어요. 주방 언니, 수금 사원, 배달 아가씨들이 따로 있었을 정도니까.” 점차 발길이 끊긴 세운상가지만, 김 씨에게 대학생 손님들은 특별하다. “젊은 학생들도 많이 와주고 해서 정말 고맙고 감자나 옥수수라도 하나 더 쪄서 주고 싶어요.”

 김 씨는 솔다방을 동네 사랑방으로 묘사 한다. “모든 사람이 신나게 놀고 떠드는 곳이 사랑방이잖아요, 이곳이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전자제품들이 정신없이 밝은 빛 을 뿜어대는 세운상가를 푸근한 인간미로 달래주는 이곳엔 오늘도 진한 냉커피가 타진다.

김태형기자 f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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