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람은 어떤 집안에 태어난다. 아버지로부터 조부, 증조부, 고조부까지 소위 5대까지는 쉽게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동고조이면 8촌이라는 말이 있다. 8촌까지의 일가는 같은 식구이므로 서로 도움을 받고 도와주면서 살아간다. 외가와 처가로까지 인맥이 넓어진다. 내 핏줄의 일이면 더 생각하고 배려한다. 혈연(血緣)의 일이다.

 또한 사람은 어떤 지역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고향이라는 것이 생겨난다. 성장해서 도시로 진출해도 그 사람은 고향 출신 사람들과 각별하게 지낸다. 고향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없으니 고향과 고향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를 지연(地緣)이라고 한다.

 사람은 자라서 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중고,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게 된다. 어느 학교 이건 동문회가 사회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학교마다 졸업생들은 동문회를 결성하여 서로 간에 정보를 교류하거나, 졸업 후 사회생활 속에서도 크고 작은 도움을 주고받는다.학연(學緣)의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혈연, 지연 그리고 학연이 중요하게 작용하여 사회생활에서 출세에 필요한 요소로서 회자되어왔다. 그러나 연() 중심의 사회는 특정한 연을 갖지 못하는 사람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그들로 하여금 소외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유능하고 열정적이지만 연이 없는 사람에게 제대로 일할 기회를 앗아가서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나마 최근 소가족제와 도시화의 진행으로 우리 사회에서 혈연과 지연은 많이 희석되어졌다. 그런데, 학연만큼은 아직도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오히려 더 강화될 조짐을 보인다. 과연 학연은 부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배척되고 사라져야 할 대상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학연이 부정적인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많기에, 그 순기능을 발휘해 건강한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도록 우리 스스로 노력하여야 한다. 학연의 긍정적인 기능으로 대표적인 것은 바로 학연이 구성원에 대하여 부여하는 자제력이다. 어느 고등학교, 어느 대학교 출신이기 때문에 남에게 그 학교의 졸업생인 자신이 나쁜 평가를 받지 말아야하고, 그 학교의 명예를 높이기 위하여 행동에 조심하고 헌신하려는 마음 상태를 가지려는 자세가 바로 자제력이다. 재학 중 혹은 졸업 후에 자연스럽게 이러한 자제력이 키워진다. 명문일수록 그러한 생각들이 구성원 사이에 강하다.

 명절이나 연말연시에 제자들로부터 선생님과 연구실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을 때에는 학연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자제력 부여기능이 있다는 점을 재삼 확인하게 된다.

 학연 중에서도 대학원 석·박사과정생들로 구성된 교수의 연구실은 가장 높은 차원의 것이다. 같은 연구실의 지도교수 밑에서 동문수학한 선배 후배들은 학교의 명성뿐만 아니라 연구실의평판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 되어있다. 교수도 마찬가지이다. 연구실의 제자들에게 부끄럼 없는 스승이 되어야 한다. 강의와 연구에 전념하여 성과를 내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제자들의 혼인을 위한 주례를 부탁받고 주례석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스승으로서의 고매한 인품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연구실의 스승과 제자들은 서로 쌍방향으로 자제력을 키운다.

 명문 고려대의 구성원들은 위와 같은 학연의 자제력 부여라는 긍정적인 기능을 잘 살려 나가서 국가와 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바 명문대학으로서의 소명을 다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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