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오랜만에 두 번째로 이 책을 들게 되었다. 각 문장 하나하나를 심도 있게 들여다보고 곰곰이 생각해야 하는 난해한 문장으로 구성된 부류의 소설이 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소설에 점성이 있다는 표현을 한다. 하지만 <설국>은 이와 반대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하다. <설국>을 읽다 보면 이야기의 흐름을 순식간에 넘기다가 앞 문장, 앞 페이지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문장이 어렵지도 않고 강한 서사, 즉 눈에 띄는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미끄러진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미끄러진다라는 표현은 너무 나가 버렸고, 진행 방향의 반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방금 <설국>을 과속해서 읽어버리는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진도를 되돌리게 만드는 매력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거울 속에는 저녁 풍경이 흘렀다. 비치는 것과 비추는 거울이 마치 영화의 이중노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등장인물과 배경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게다가 인물은 투명한 허무로, 풍경은 땅거미의 어슴푸레한 흐름으로, 이 두 가지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이 세상이 아닌 상징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었다. 특히 처녀의 얼굴 한가운데 야산의 등불 이 켜졌을 때, 시마무라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 - 가 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민음사), 12p

  위의 문단은 서술자가 기차 창으로 비치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동적 이미지, 자연과 인간의 대비, 중간적 상태 그리고 그 외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여러 문학적 요소들이 감수성을 자극한다. <설국>은 탐미주의적 소설이다. 보통 사람들이 소설에서 기대하는 기승전결의 흐름과 갈등, 반전을 통한 즐거움을 주지는 않으나 글의 이미지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재미있는 서사적 요소가 아예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설국>에서 두 주인공,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사랑은 무()에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만나는 시간에서 시작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하는 모습만을 보인다. 하지만 그 둘의 관계를 다각도에서 비추어 소설의 주제는 더욱더 깊어진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첫 문장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설국>의 저자는 국경이라는 단어와 터널의 이미지를 사용해 이 작품의 배경인 설국을 일상공간으로부터 분리한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의도대로 설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생각 하는 것을 추천한다.

 

김성종(문과대 영문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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