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밤공기에스며  2019 가을축제 '모락모락'이 24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됐다. 무대에 선 학생들이 제법 쌀쌀해진 가을 밤공기에 화음을 얹었다. 양가위 기자 fleeting@

  길어진 소매 길이와 함께 캠퍼스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2019 본교 가을축제 모락모락24일부터 26일 까지 민주광장과 자유마루에서 열렸다. 파이빌 옥상에서는 25일 오후 7시부터 파이빌 라이브 파라-안 하늘이 울려 퍼졌다. 선선해진 가을날 학생들의 마음에 따스한 웃음이 스며들었다.

Day 1. 나의 삶, 나의 죽음, 나의 소망

  24일 가을축제 첫째 날, 학내 자치 단체와 가을축제 준비위원회 안암 청춘단’(단장=채승헌)이 기획한 다양한 부스들이 민주광장을 가득 채웠다.

  꽃무늬 가방과 핸드폰 케이스, 손때가 조금 묻은 영어 단어장까지. 누군가의 삶의 흔적이 조금씩 남은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새 주인을 기다렸다. 민주광장 한 모퉁이에 자리 잡은 모락시장은 잘 쓰진 않지만 버리긴 아까운 물건들을 아나바다하기 위해 안암청춘단이 기획한 부스다. 깊어지는 가을에 입기 좋은 옷들과 포스트잇에 큼직하게 적힌 저렴한 가격이 지나가던 이들을 멈추게 했다. 민주광장을 가로지르던 고우림(생명대 생명공학16) 씨의 걸음도 모락시장에 멈췄다. “작은 가방을 하나 사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이게 눈에 들어왔네요.” 혹시나 흠이 있지는 않을까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는 이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계산대를 향했다. 한 손에 가방을 꼭 쥐고 떠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알록달록한 축제 분위기와는 영 반대인 장소도 있다. ‘나의 장례식부스는 유언장을 작성하고 영정사진을 촬영할 수 있게 했다. “지금껏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어요.” 조용히 앉아 방문객을 맞이하던 박지윤(문과대 일문19) 씨가 말했다. 영정 사진을 찍으려 의자에 앉은 김부경(경영대 경영18) 씨는 카메라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그냥 예쁘게 찍으려 했는데 제가 봤던 영정사진은 모두 밝은 표정을 짓고 있던 게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미소를 지었어요.” 고작 사진 세 장을 찍는 짧은 순간에 학생들은 멀고도 가까운 죽음을 상상했다.

  학생들의 액션페인팅으로 만든 작품이 학생회관 외벽에 전시되는 전시해 시즌 2’도 눈길을 끌었다. 도화지 같은 초대형 플랑 위에 학생들은 페인트를 묻힌 붓으로 각자 적고 싶은 문구와 그림을 새겼다. 취업준비생 박성주(공과대 기계15) 씨는 모두 취뽀하자라는 보라색 글씨를 적고 요즘 하반기 공채 시즌인데 신입사원을 모집하는 기업들이 너무 적다힘들겠지만 이번만큼은 꼭 취뽀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Day 2. 음악에 취한 밤, 가을밤에 젖은 마음

  25일은 야간공연이 돋보이는 하루였다. 오후 6시부터 학생회관 앞에 설치된 무대에서 연행예술분과 동아리 공연 (프로듀)가 진행됐다. 스포츠댄스동아리 불아스’, 아카펠라동아리 로그스’, 뮤지컬동아리 소울메이트’, 스트릿댄스동아리 ‘KUDT’의 공연이 차례로 이어졌다. ‘로그스무대를 지켜본 허하연(문과대 언어16) 씨는 아카펠라에 대해 잘 몰랐는데 목소리가 쌓여 하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되는 순간이 인상적이었다노래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랩 실력도 수준급이어서 깜짝 놀랐다는 소감을 전했다.

  동아리 공연 사이사이 사회자가 즉석에서 공연자를 모집해 무대로 부르기도 했다. 풍물패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오한승(문과대 언어19) 씨는 가수 박원의 노력을 불렀다. “풍물패 동아리 연습하러 가는 중에 궁금해서 들렀어요. 노래 부를 사람 아무나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갑작스럽게 노래한 탓에 많이 떨렸지만 정말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오 씨가 무대를 내려오며 소감을 말했다. 공연이 모두 끝나고 최예찬(공과대 건축사회환경19) 씨는 소울메이트 공연의 마지막 곡(‘내가 춤추고 싶을 때’)이 가장 좋았다남성분의 저음이 특히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고 전했다.

파이빌 옥상. '최단거리' 팀의 '폰서트'(십센치)

  같은 시간, 파이빌은 오후 7시부터 라이브 공연 파라-안 하늘을 열었다. 구름이 별들을 가린 탓에 여느 때보다 어두운 저녁이었다. 그래서인지 주황색 꼬마전구들이 옅은 불을 밝혀 주는 파이빌은 밤이 깊을수록 아늑한 느낌을 자아냈다. 첫 번째 연주자로 나선 김예은(미디어15) 씨는 이날, 그의 인생 첫 공연을 선보였다. “혼자 연습은 많이 했지만 이렇게 여러 사람 앞에 서는 건 처음이라 떨리네요.” 관중석을 바라보는 표정에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 사이였다는 이온결합팀은 익숙한 호흡을 자랑했다. “옛날엔 체육관 지하에서 연습하곤 했는데, 이젠 지하 동아리방에서 같이 연습하고 있네요.” 건반을 맡은 김온유(공과대 기계18) 씨는 능숙하게 연주를 이어가던 중 그만 악보를 놓치고 말았다. “바람도 불고 주변이 낯설어서 실수가 나와버렸어요. 그래도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관중석에 앉아 있던 조광현(사범대 교육 18) 씨는 지난 5월에 있었던 파이빌 라이브에 연주자로 참여했다. “그때는 공연에 집중하느라 못 봤는데 여기 분위기가 참 좋네요.” 흐르는 연주에 따라 고개를 살랑이던 그는 깊어가는 가을을 물씬 느꼈다.

Day 3. 모닥불이 모락모락

가을축제 마지막 밤, '모닥불 주점'에 모인 손님들이 살랑이는 등나무 아래에서 노래를 흥얼이며 잔을 기울이고 있다.

  26일 안암청춘단은 축제 마지막 날을 맞이해 BYOB(Bring Your Own Booze: 술을 각자 사 들고 오는 방식) ‘모닥불 주점을 마련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민주광장에 전구를 얹은 테이블이 줄 맞춰 준비됐다주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야간무대에는 학생들의 자유공연이 펼쳐졌다. 장정원(정경대 경제 14) 씨는 기타 한 대만 가지고 홀로 무대에 올라섰다. “Sunday morning rain is falling...” 마룬파이브(Maroon 5)‘Sunday Morning’을 첫 곡으로, 기타 줄에 더해진 그의 목소리가 고즈넉한 밤을 적셨다. 주점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오은영(대학원·생활과학과) 씨는 다른 공연 안 보러 가도 될 만큼 무대가 좋고 다들 잘하네요라며 감탄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꺼내는 옛날이야기에 흥이 더해지며, 테이블에는 빈 맥주캔이 쌓여갔다.

민주광장. 최명하 씨의 '백허그'(플랫핏)

  오후 9시경 모닥불 주점은 만석이 됐다. 서서 공연을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무대를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한다 미카(はんだみか, 문과대 일문18) 씨는 한국 특유의 대학문화가 느껴진다며 꽤 능숙한 한국말로 감상을 전했다. “그냥 지나가다 축제 기간임을 알게 됐는데 무대가 다 재밌어서 보고 있어요. 분위기도 괜찮네요!” 무대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 달이 비쳤다. 유난히 반짝이던 가을밤이었다.

김영현·이동인 기자 press@

사진이수빈·양가위 기자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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