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4 16:41 (수)
[타이거쌀롱] ‘WOW클래식’, 편의성과 즐거움은 어떤 관계일까?
[타이거쌀롱] ‘WOW클래식’, 편의성과 즐거움은 어떤 관계일까?
  • 고대신문
  • 승인 2019.09.2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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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8월 말 출시된 블리자드 사의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클래식’(이하 와우 클래식’)은 사실 15년 전에 이미 출시되어 선풍적 인기를 끈 버전 그대로를 다시 매만져 낸 작품이다. 그래픽 모델링 정도만 일부 개선이 있었을 뿐, 게임의 기본 시스템은 조금의 변화도 없이 15년 전의 시스템 그대로를 유지한 채로 출시되는 바람에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논쟁이 있었다. 15년 전의 불편함이 그대로라 요즘 사람들이 플레이하기 힘들 거라는 우려에서였다. 그러나 정작 서비스 출시가 이루어진 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전세계적으로 사람이 넘쳐나 서버 증설이 계속 이어졌고, 게임 안에서는 특정 몬스터 처치 퀘스트를 하기 위해 캐릭터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북적거리는 대흥행을 맞았다.

  흥미로운 점은 세간의 우려대로 오래된 게임의 불편한 점이 그대로였음에도 이런 흥행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와우 클래식은 최신 게임처럼 특정한 퀘스트 수행을 위해 가야 할 위치를 알려주지도 않고, 머나먼 길을 순간이동 같은 편의수단 없이 마냥 20분간 뛰어가야 하는 경우도 잦은 편이다. 빠르게 레벨업을 시켜 주는 부스터나 보조수단도 전무해 누군가는 하루종일 뛰다 끝난다며 이봉주 온라인아니냐는 자조 섞인 별명을 달기도 할 정도였다.

  최근의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들이 광고 문구 등을 통해 강조하는 지점은 빠르고 쾌적하고 강력한플레이다. 접속만 해도 만렙 달성! 사전예약을 마치면 최고급 장비 지급! 같은 문구들이 당대의 게임을 둘러싼다. 그런 와중에 다소 구닥다리로 느껴지는 와우 클래식에 호평이 쏟아지는배경에는 게임의 즐거움이 반드시 빠르고 쾌적하고 강력한것과 연관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심리학자 미하일 칙센트미하이는 몰입(Flow)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어떤 일에 부과되는 어려움의 정도와 그 일을 대하는 이가 가진 극복을 위한 숙련도가 조화를 이루는 순간에 몰입이 발생하며, 이 몰입이 여러 힘겨움과 괴로움을 잊고 사람을 특정한 일에 집중시키는 힘을 이끌어낸다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는 업무나 학습 등에서 몰입이 발생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으나, 같은 맥락은 게임 플레이에서도 발견된다.

  적정한 난이도, 적정한 힘겨움이라는 것이 아예 없어진다면 디지털게임은 때로는 해야 할 무언가를 잃고 방황하는 플레이로 빠져들기 일쑤다. ‘테트리스의 기본 개념은 서로 다른 모양의 블록들을 쌓아나가며 꽉 찬 한 줄을 만들어 없애는 것인데, 블록이 모두 일자로 된 일명 작대기만 나온다면 클리어는 쉽겠지만 그 과정은 별다른 재미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매번 기괴한 모양의 블록만 쏟아진다면 지나치게 어려워 플레이어는 아무런 성취감도 못 느끼고 게임을 떠날 확률이 높다. 게임에서의 몰입도 난이도와 숙련도의 적절한 균형지점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칙센트미하이의 지적은 꽤나 유의미하다.

  귀찮고 불편하게 제공된 무언가 속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역할을 확인한다. ‘와우 클래식의 지루한 달리기는 한편으로는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플레이어로 하여금 주변 풍광을 좀 더 감정 깊게 담아 관찰하게 만들거나, 혹은 지인과의 채팅으로 채워내도록 만드는 배경이 된다. 주어진 퀘스트 지문을 받아들고 갈 길을 고민하거나, 최적의 전투 코스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행위가 모두 플레이의 범주 안에 포함된다. 자동으로 주어지는 플레이의 세계가 차단했던 보다 깊숙한 플레이어의 개입은 좀 더 험난하고 귀찮은 게임 환경 속에서 다시금 빛을 발한다.

  보는 재미로 구성된 책이나 텔레비전 같은 매체들은 게임과 같은 외적 상호작용이 없는 대신, 내러티브 안에서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내적 상호작용의 근거들을 만드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디지털게임은 그와 달리 직접 컨트롤, 자기가 구성하는 동선과 전략을 통한 외적 상호작용을 통해 맥락을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최근에 두드러진 자동사냥과 같은 게임들의 방식은 일정 부분 디지털게임이라기보다는 보는 매체의 방식에 가깝게 구성되는 경향을 보이지만, 그렇다고 텔레비전이나 책처럼 두터운 내러티브적 구성을 갖는 것도 아닌지라 결과적으로는 매체의 본질만을 놓친다는 비판에 직면하곤 했다.

  15년 전의 게임이 그대로 돌아왔을 때 드러나는 지점은 그래서 이 매체가 가진 본질적 속성이 무엇이었느냐는 의외로 철학적인 질문의 존재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광고문구였던, ‘우리는 왜 싸우는가?’는 돌아온 옛 버전을 통해 오늘날의 게이머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플레이하는가?’

 

이경혁 게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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