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장기미제사건인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30여 년 만에 특정됐다. 1994년 처제 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50대 이모 씨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진범이 그 수감자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언론들은 일제히 용의자의 신상을 줄줄이 보도하고 있다. 용의자인 이모 씨는 화성사건 당시 사건 발생 일대에 거주했고, 용의자로 경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또한 처제 살인 당시의 범행 수법이 화성 사건만큼이나 치밀하고 잔혹했다. 이에 두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일 수 있지만, 이모 씨는 아직 수사 단계의 용의자다.

  경찰이 이모 씨를 특정한 것은 총 9차례의 범행 중 3차례 사건의 증거물에서 나온 DNA가 이 씨의 것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DNA 분석 기술은 DNA 일치 시 동일인이 아닐 확률이 극도로 낮기에 범죄수사 과정에 신뢰성 있는 증거로 활용돼왔다. 하지만, 지금의 용의자가 6차 수사 선상에서 제외된 건 혈액형과 같은 과학적 근거 때문이었다. 당시 혈액형 검사로 추정한 용의자의 혈액형이 B형이어서, O형인 이 씨는 자연스럽게 제외된 것이다. 기술 수준이 낮았던 시대의 혈액형 검사보다 DNA 분석이 정확도가 훨씬 높지만, 지금도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한두 가지 근거만 쫓고 있다. 또한 DNA 일치 사실이 확인된 건 3차례의 범죄일 뿐이다.

  지금 필요한 건 완벽한 증거를 확보한 가운데 용의자의 자백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공소시효도 끝나 정식 재판도 벌일 수 없는 상황이다. 범죄 사실을 정의로운 법질서 아래 납득시키기 위해선 더더욱 확실한 입증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해결 못한 사건의 용의자라도 명확한 입증이 없다면, 이 헝클어진 원칙 아래 무고하게 희생될 수 있다. 이미 더 이상 사회의 밝은 빛을 볼 수 없는 무기수지만, 연쇄살인이라는 엄중한 범죄사실이 그의 죄과에 추가되는 건 개연성 이상의 문제다. 오랜 시간 동안 의혹만 남기고 무성히 꼬였던 사건인 만큼, 차분히 풀어가야 할 때다.

 

이선우 기자 e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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