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나 후배가 훈련소에 들어가면, 바깥소식 한 줄 전하고자 서랍 한 귀퉁이에 웅크리고 있는 편지지 한 장을 찾는다. 노트북이나 핸드폰이라면 순식간에 화면을 채울 수 있지만, 익숙지 않은 펜을 손에 꼭 쥐고 흰 종이 위에 한 글자씩 채워 나간다. 가끔 나오는 오탈자나 제멋대로인 글씨체에 손바닥에 배인 진땀을 닦으면서도, 종이 위에 서서히 쌓여 가는 육필(肉筆)은 소중한 사람에게 진심과 그리움을 전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되곤 한다.

  물론 지금은 손글씨보다 노트북 타이핑이 익숙해진 시대다. 과거의 향수에 젖고 싶은 사람들, 연인과 친구에게 진심을 전하고픈 사람들은 여전히 많지만, 디지털화가 진행된 지난 20여년 동안 일상생활에서 아날로그의 흔적은 희미해졌다. 종이 위의 손글씨는 특별한 것, 화면 위의 딱딱한 고딕체는 일상의 것이 돼버렸다.

  그래도 팽팽한 종이 위에 무언가를 서툰 글씨로 채워나가려는 욕구는 여전해 보인다. 지난 2011년 삼성전자에서 첫선을 보인 갤럭시 노트을 전면에 내세웠고 2019년 현재까지 시리즈를 거듭하며 최고급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초반 가장 좋은 펜은 손가락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현재 스마트폰, 태블릿 시장에서 펜의 위상을 무시하는 이는 없다. 펜을 쥐고 무엇인가를 적을수 있다는 점은 울퉁불퉁한 글씨체로 꼬깃꼬깃 손편지를 접어내던 아날로그 세대에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이제는 어느새 딱딱하고 반듯한 것에 익숙한 디지털 세대에게 새로운 동경이자,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아날로그적 향수(鄕愁)는 다시금 신기술에 서서히 녹아들고 있다. 사람들은 기계다운것이 아닌 인간다운것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복잡한 프로그램 명령어를 입력하던 이들은 인간의 목소리를 가진 음성 비서를 불러내고, 더 나아가 인간처럼 생각하고 움직이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어쩌면 다가올 근미래의 모습은, 딱딱하고 차가운 금속 문명이 아니라 인간의 따뜻함이 채워지는 풍경이 아닐지 기대해본다.

 

전남혁 시사부장 m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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