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방

최승호

  자궁에서 나올 때부터 눈썹이 유난히 희었다는 노자(老子)는 여백에서 왔다가 여백으로 돌아간 여백의 백성이다. 그는 긴 여행 중에 가방을 하나 분실했는데, 그것이 바로 후세에 전해진 <노자>이다.


  종착지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떠나게 된다는 점에서, 여행과 사람의 일생은 유사점을 갖는 듯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작든 작지 않든 그들 여정 중에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 자신들이 남긴 흔적과 함께 타인의 기억 속에 남게 되기를 소망하는 것 같다. 근래에는 덜 하지만, 유명 관광지에서 여러 이름의 낙서가 눈에 띄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사회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더 큰 족적을 남기고자 부단한 애를 쓰는데 이 역시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생몰 연도가 알려지지 않은 노자 또한 한 명의 인간이었다면 분명 일생이라는, 그 자신만의 긴 여정이 있었을 것이다. 어느 한 시점의 종착역에선 여정을 마쳤을 것이고 말이다. 그렇지만 그는 수많은 여느 여행객들과는 분명 달랐다. 흔적을 남기는데 급급했을 법도 하지만 그는 단지 가방 하나를 분실했다. 물론 그가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확인될 길이 없으나 그가 분실한 이 여행 가방은 효과적으로 그의 이름을 역사에 남겼다. 만약에 그가 여행 가방을 분실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더 높은 곳에 낙서하겠다며 난간을 밟고 올라서는 수고조차 마다않는 유명 관광지에 이들처럼 굴었다면 말이다.

  시인의 또 다른 작품 <꿩 발자국>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꿩이 눈밭을 걸어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뚜렷한 족적(足跡)을 위해 어깨에 힘을 주면서 발자국 찍기에 몰두한 것도 아니리라.’ 꿩이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겠다고 부단한 애를 쓰고 있다면 그 얼마나 우스운 모습일까.

 

이현수(공과대 건축사회환경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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