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경영학 연구기관이 본교에 있다. 바로 창립 60년을 넘어선 기업경영연구원(원장=배종석 교수, 기연)이다. 산업계와 기업경영의 주도적 역할을 해온 기연은 최근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더는 지식이 대학의 전유물이 아니며, 산학협동의 패러다임이 질적인 측면에서 변화돼야 한다는 믿음에서다. 배종석 기업경영연구원장은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서 기연은 두 가지 역할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첫째로 부분적인 것을 통합하여 현상을 평가·해석할 줄 아는 세계관과 관점을 제공하는 역할을 짚었고, 둘째로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가지고 경영학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강조했다.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복잡한 현상을 간결하게 개념화해 소통할 수 있도록 기연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기연에 요구되는 새로운 방향성

 그동안 경영학은 모더니즘에 기반해 발전해 왔다. 특별히 경험하는 것만 존재한다고 보는 경험적 실재론(empirical realism)과 경험적 데이터 분석에 치중한 실증주의(positivism)와 함께 성장해온 것이다. 하지만 향후 인류의 삶은 새로운 기술 발달에 따른 4차산업혁명의 영향을 받아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현상에 직면할 것이다. 인류의 삶을 보존하고 향상시킨다는 기업의 존재 이유에 따라, 기업은 미래 인류의 번영과 지속 가능한 공동체 유지를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배종석 원장은 기업은 미래 인류의 삶을 상상해야 한다미래에 삶의 양태가 바뀌는데, 이런 이해 없이는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개발하고 제공할 수 없다고 했다. 이것은 거대담론이나 이성 중심의 접근에 대한 거부와 개성을 강조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접근이 요구되는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기업경영이 포스트모더니즘에 전적으로 의존하기는 힘들다. 이 관점이 가진 반실재론적 성격으로 인해 기업사회를 사회 구성적(socially constructed)으로 이해하고, 또한 사회의 실재적 측면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배종석 원장은 따라서 기업경영은 모더니즘적 실재론에 입각한다고 하더라도, 경험하지 못한 것의 실재를 인정하는 과감한 존재론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미래에 펼쳐질 삶의 모습을 미리 그려보는 상상력을 결합해야 한다여기서 기업경영연구원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이 발견된다고도 말했다.

 기업경영연구원에 속한 고병완(경영대 경영학과) 교수의 4차산업혁명과 연관된 연구는 새로운 변화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문정빈(경영대 경영학과) 교수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적 가치 추구를 다룬 연구는 경영의 근본적인 토대와 방향에 대해 전하고 있다. 본교 기업경영연구원의 역할과 부합하는 두 가지 연구를 소개한다.

 


고병완(경영대 경영학과) 교수의, 

기업의 가격차별화 정책에 대한 관리와 규제 필요에 관한 연구

 오늘날 기업에게 고객의 정보를 활용해 의사 결정에 이용하는 고객 데이터 애널리틱스(customer data analytics)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고객들의 인구통계학적 정보(demographic information)와 심리학적 정보(psychographic information)뿐만 아니라 인터넷 검색 기록과 구매 내역 등의 다양한 개인 정보를 분석하여 그들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고객들은 조금 더 편리하게 원하는 상품을 찾아 구매할 수 있으며, 기업들은 추가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개인정보보호(privacy)와 기업들이 고객 정보를 가격 차별화(price discrimination)에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기업의 고객 데이터 수집 및 활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미국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는 고객에게 선택권을 줘 기업들이 개인정보제공에 동의하는 고객의 정보만 수집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를 자발적 프로파일링(voluntary profiling)이라 부른다.

 자발적 프로파일링하에서는 원하는 고객들만 기업에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원하지 않는 고객들은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기에 직관적으로는 모든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적 접근방법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논문 ‘Is voluntary profiling welfare enhancing?’에서는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고객 그룹과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고객 그룹 간에 구조적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기업들은 이러한 구조적 차이를 의사 결정에 이용할 수 있으므로 자발적 프로파일링 하에서 반드시 모든 고객이 만족하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온라인 쇼핑몰들은 많은 경우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고객들에게 할인 쿠폰 등의 혜택을 주고 있으며, 가격에 민감한 고객들은 이러한 혜택을 받기 위해 개인정보를 자발적으로 제공할 것이다. 반면 할인 쿠폰 등의 혜택이 충분한 유인책이 되지 못하는 고객, 즉 가격에 민감하지 않은 고객은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고객들이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로부터 그들이 가격에 민감하지 않은 고객일 수 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고객들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한 고객들에 비해 동일한 상품에 대해 높은 가격을 부과하는 가격차별화 정책을 사용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멤버십 카드 등을 통해 이러한 가격 차별화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온라인 기업들 역시도 다양한 고객 정보를 활용해 개인정보를 제공한 고객에게는 맞춤 가격(personalized pricing) 전략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개인정보를 제공한 고객과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고객 간에도 다른 가격을 부과하고 있다. 이러한 자발적 프로파일링의 역기능은 정보보호법을 강화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의 논문은 기업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가격 차별화 전략을 적절히 관리하고 규제해야만 자발적 프로파일링이 그 취지대로 원하는 고객만 개인정보를 제공해 고객 데이터 애널리틱스로부터의 여러 혜택을 누리고, 원하지 않는 고객은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아도 아무런 역효과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논문: Koh, B., S. Raghunathan, and B.R. Nault. Is voluntary profiling welfare enhancing?. MIS Quarterly. 41(1), March 2017, 23-41.)

 


문정빈(경영대 경영학과) 교수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가치 창조에 관한 연구

 최근 경영학에서는 사회적 책임과 사회적 가치 창조와 관련된 논의가 활발하다. 사회적 가치를 분야별로 구분할 때에 주로 사용되는 기준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구분이다. 환경 측면의 가치는 친환경 제품 개발, 친환경 공정 혁신, 에너지 및 자원 절감 및 그와 관련된 경영 활동들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고, 사회 측면의 가치는 기업이 소비자, 임직원, 협력업체, 지역공동체 등의 이해관계자와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만들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배구조 측면의 가치는 주주에 대한 정당한 배당, 적절한 내부 통제, 부패방지, 납세 의무의 충실한 이행, 윤리경영 등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고려대에 부임한 이후 공저자들과 함께 연구하여 출간한 논문들을 요약해 살펴봄으로써 관련 연구의 흐름을 소개하고자 한다.

 2012년에 <BE Journal of Economic Analysis & Policy>에 게재된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for Irresponsibility’라는 제목의 논문에서는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행하는 이유가 과거에 저지른 사회적 무책임(social irresponsibility)에 대한 참회 때문임을 밝혔다. 이 논문은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 활동을 하는 이유로서 참회 메커니즘을 처음으로 제시해 널리 인용되고 있다. 같은 해 <경영학연구>에 게재된 논문에서는 사회적 책임 보고서를 발간하는 기업들이 실제로 사회적 책임 성과가 높음을 보여주었고, 2013<Korea Business Review>에 게재된 논문에서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 혁신형 사회적 기업인 ‘Tree Planet’ 사례를 소개했다. 2014<금융지식연구>에 게재된 논문에서는 4-팩터 모형을 사용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성과와 주주가치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로써 당해 사회적 책임성과가 가장 뛰어난 집단에 속한 기업의 주가수익률이 사회적 책임성과가 가장 열악한 집단에 속한 기업의 주가수익률보다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음을 밝혀냈다.

 이후로 환경 측면에 주목하여 2014<Production and Operations Management>에 게재한 논문에서는 중국과 같은 신흥시장에서 수출 또는 해외직접투자(FDI) 등을 통해 국제적으로 연결된 현지기업들이 국제적 연결이 없는 기업들에 비해 생산과정에서 오염물질을 덜 배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로써 신흥시장의 자연환경보존을 위해 시장 또는 투자를 통한 해외와의 연결고리가 도움이 됨을 밝혔다.

 2016<Journal of Business Ethics>에 게재된 논문에서는 해외직접투자를 받은 중국기업들이 해외직접투자를 받지 못한 중국기업들에 비해 더 우수한 재무성과를 보임을 발견했다. 해당 기업들이 오염 산업에 속해 있을 때, 그리고 해외직접투자의 본국이 환경경영 측면에서 앞서 있을 때 이러한 결과가 나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신흥시장에서 해외직접투자자의 환경경영 측면에서의 우위가 경쟁우위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였다. 2018년에 <국제경영연구>에 게재된 논문에서는 다국적 기업의 친환경 기술 연구개발의 결정요인에 관해 연구했는데 기업의 환경 관련 평판이 낮을수록, 그리고 기업의 보상체계가 장기적으로 설계돼 있을수록 친환경 연구개발이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연구들의 연장선에서, 현재는 신흥시장에서 환경경영 성과가 높은 외국기업과 가까이 위치한 현지기업이 외국기업으로부터 기술이나 노하우를 전수받음으로써 환경경영 성과가 높아질 수 있는지, 따라서 시장이나 투자와 같은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더라도 외국기업 유치의 긍정적인 외부성이 존재하는지 연구하고 있다.

 전 지구적 기후 변화와 세계화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로 인해 기업을 향한 사회의 요구와 압력은 나날이 거세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이 평판을 유지하고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재무적 성과뿐 아니라 환경, 사회, 지배구조 측면의 가치를 추구할 것이 요청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해 새로운 데이터와 방법론을 동원해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정리이동인 기자 whatever@

도움배종석 기업경영연구원장, 고병완(경영대 경영학과) 교수, 문정빈(경영대 경영학과) 교수, 이정민(기업경영연구원) 직원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