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7 19:38 (월)
사라져가는 우리의 갓, “제가 하지 않으면 끊어집니다”
사라져가는 우리의 갓, “제가 하지 않으면 끊어집니다”
  • 이선우 기자
  • 승인 2019.09.29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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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취약종목’ 갓일(국가무형문화재 제4호) 정춘모 보유자 인터뷰

 

 선비의 고담한 정신을 상징하는 갓, 한때는 많은 이들의 격식과 자태를 더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갓의 수요가 사라진 지금은 극소수 장인들의 손으로만 이어질 뿐이다.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 갓 공방에서 만난 정춘모 보유자는 평생 갓에 몸과 마음을 바쳐 침침해진 눈이지만, 빛바랜 스승들의 사진을 가리키며 갓과 함께한 일생을 하나하나 짚어 나가기 시작했다. 한평생 통영갓 전승에 인생을 바친 선생을 통해 갓에 담긴 장인의 세월을 반추해봤다.

- 통영갓의 명맥을 잇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고향은 경북 예천인데, 젊었을 적 대구로 나가 살 때 전문가들 밑에서 갓을 조립하는 일을 배웠습니다. 그때 대구에선 갓을 만들어 전국에 도매를 많이 했고, 옛날 통영갓을 만드셨던 분들이 기술자로 일했지요. 당시 스승님이 계속 기술자로 품삯 받고 일하시다가 나이가 드셔서 통영으로 내려가셨는데, 서신 연락을 주고받다가 당신의 제자들이 갓 만드는 일을 아무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갓의 명맥을 잇기로 하고 통영으로 내려갔습니다. 1974년도에 전수장학생이 된 후 양태와 총모자 만들기, 그 둘을 조립해 갓을 완성하는 입자 일까지 통영갓의 모든 제작 과정을 배웠습니다.”  

- 그 결심에는 많은 의지가 필요하셨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그때 인간문화재 제도가 도입되고 먹고 살 정도는 아니더라도 국가에서 돈 몇 푼 쥐어주기는 했는데, 그래도 중간에 도망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자기 인생을 거기다 바쳐야 하니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옛날 스승들이 자기 자식 가르쳐보려고 해도 결국 못 가르쳤어요. 그때 나도 이걸 한평생 할 수 있느냐, 못 하느냐, 다른 직업에 나가야 하느냐 기로에 놓일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굶어 죽지 않을 만큼 대책을 마련한다든가 중간에 갓 만드는 일을 포기하지 않도록 애 무지하게 썼습니다. 아예 안 하는 건 괜찮아도, 하다 그만두면 안 됩니다. 그건 (전통이) 끊어지는 거예요.”
  
-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만들어온 통영갓은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나요
“갓을 만들 때는 먼저 갓의 테인 양태와 총모자를 만들어야 합니다. 양태는 아주 가느다란 죽사를 하나하나 엮어서 만듭니다. 양태 바닥이 아주 촘촘하고 매끄러워야 그게 통영갓이에요. 또 총모자도 말총으로 한 올씩 엮어야 하니 보통 노력이 드는 게 아닙니다. 이것들만 만들어도 몇 달은 족히 걸려요. 그리고 양태에 총모자를 엮어 수십 번의 먹칠과 옻칠을 거쳐 완성품을 만드는 건 입자장(笠子匠)인 내 역할입니다.
 특히 통영갓의 은은한 곡선을 살리려면 트집을 잘 잡아야 해요. 양태를 인두로 잘 지져서 곡선을 잘 잡아야 갓이 아름다워요. 트집 잡는 게 갓의 형태를 잡을 때 제일 신경 쓰는 부분입니다. 또 먹을 잘 조절해서 먹칠, 옻칠을 계속 반복해야만 갓이 완성돼요. 이런 기법들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수백 년을 이어져 내려온 겁니다.
 그리고 갓도 다 같은 갓이 아니에요. 다른 지방의 것과 통영갓은 차이가 납니다. 기법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작품 자체가 다르니까 명성이 높아요. 통영갓이 이렇게 발전한 건 놀랍게도 이순신 장군의 영향이 큽니다.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영을 만들 때 전국의 장인을 모아 공방을 설치해 갓을 비롯한 공예품들을 많이 만들게 했어요. 그때부터 통영갓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됐고, 지금도 통영갓은 사람들이 알아줍니다.” 

- 하지만 통영갓의 명맥을 잇고 계시는 보유자는 선생님 한 분뿐입니다
“처음 갓을 배우러 통영으로 내려갔을 때는 갓일 1대 보유자인 양태장, 총모자장, 입자장 스승님 세 분이 계셨지만, 모두 고령이었습니다. 한 가지만 배우다간 대가 끊길 것 같아 기를 쓰고 이분들 살아계실 때 내가 세 가지를 다 배웠습니다. 그런데 한 분씩 돌아가시다 1979년에 총모자장 고재구 선생까지 돌아가시니까 나 혼자 덜렁 남았습니다. 여기 그때 선생들이 썼던 도구들 다 남아있어요. 내가 없었다면 통영갓 자체가 사라졌겠죠. 통영갓이라는 말도 아마 사라졌을 겁니다.
 점점 갓을 쓰는 사람들도 사라져가 갓을 알려보겠다고 다큐멘터리도 찍고 그랬지만, 그것들도 다 소용이 없었어요. 고민하다 서울로 올라가 다른 장인들이랑 지금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 자리에 가건물을 짓고 갓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여기서 가족들까지 다 가르쳐 통영갓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집사람도 내 곁에서 30년을 넘게 양태 만드는 일을 배웠고, 아들은 전수교육조교로도 지정돼 있습니다. 우리 며느리도 엊그제 이수자 심사를 받았어요. 아들 부부 말로는 아래에 둘 있는 손주들도 이어가게 할 거랍니다. 갓을 지키는 일로 고전할 때 집사람이 늘 곁에 있어 주고, 제일 어려운 양태 짜는 일도 도와줘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아들도 어머니를 닮아서 자식까지 시키겠다고 하니 내 목적과 뜻이 이뤄진 것 같아 뿌듯합니다. 지금 죽더라도 할 일은 다 한 것 같습니다.”

- 요즘은 사극에서만 갓이 간간히 보입니다
“요즘 TV를 보면 사극에선 다 나일론 갓을 다 쓰고 있어요. 나 같은 사람들은 한눈에 알지만, 일반 사람들이 보기엔 별 차이를 못 느끼는 거죠. 옛날에는 갓이 의관을 갖춘 고고한 선비의 정신을 상징했지만, 요즘에는 별 의미 없이 쓰이니까 그건 좀 섭섭합니다. 물론 갓을 만드는 일이 워낙 오래 걸려서 모든 사극에서 직접 만든 갓을 쓰는 건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임금이나 주인공 정도는 제대로 만든 갓을 써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 더 이상 갓을 쓰지 않는 시대, 선생님께서는 시대의 변화를 어떻게 감당하고 계신가요 
“처음 갓을 배울 때는 그래도 갓을 쓰는 사람이 좀 있었어요. 그때는 쓰는 사람의 정신이나 취향에 맞게 갓을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근데 요즘 들어서는 갓이 쓰는 게 아니라 체험하는 일이 됐습니다. 솔직히 쉽게 적응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미 옛날 것이 된 갓에 대해 현대인이 뭘 알고 싶고, 궁금해하는지만 조명하는 지금의 문화는 솔직히 갓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즐거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문화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물결같이 흐르는 세월 따라 가는 거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대대로 이어져야 하는 일이니까 요즘에는 전시나 시연 활동에도 자주 참여해요. 최근에 통영에 갓 공방이 복원돼서, 거기 가서 갓을 만들면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와요. 또 내년엔 디자이너랑 협업해서 갓을 만드는 기술을 활용해 현대적인 제품을 생산하는 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물건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알리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으니까 시도는 해볼 겁니다. 이렇게 기본은 닦아줘야 후세대가 갓을 만들면서 밥은 먹고 살 수 있죠.” 

- 무형문화재의 소멸 위험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장인을 향한 사회의 시선에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가만 보면 주변에 나처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힘들어도 전통문화를 지키려고 해요.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희생을 당연하게만 보는 태도는 잘못된 것 같습니다. 정부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만큼 깊지 않은 건 알고 있었지만, 최소한 보존은 되게 해야죠. 자존심 상해서 먹고살기 힘든 걸 말 못하는 장인도 많습니다. 지금은 무형문화재 보존이 개인이 지키려고 발버둥 치는 걸로 끝납니다. 최소한 보존은 할 수 있도록 국가의 지원이 모여야 합니다. 우린 나라의 미래를 보고 일을 합니다. 개인의 희생으로는 한계가 분명 있어요.” 

글│이선우 기자 e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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