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준 교수가 위치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구결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장경준 교수가 위치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구결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흔히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라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다만 역사를 알고 싶다면 과거 사람들이 쓰던 글자를 읽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한글이 없던 시대에 사람들은 어떤 문자체계를 가지고 기록했을까. 장경준(문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연구하는 차자표기와 국어사는 이런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중세국어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해 점토석독구결의 권위자라 불리는 장경준 교수와 만났다.

 

- 교수님이 연구하시는 차자표기 중 구결이란 무엇인가요

  “당연하게도 한국어는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차자표기는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전 한자를 이용하여 한국어를 표기한 방식입니다. 대표적으로 이두, 향찰, 구결로 구분합니다. 여기서 구결은 기존의 한문으로 된 문장을 우리말로 해석할 수 있도록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 표시하는 걸 ()를 단다고 합니다.

  흔히 알고 있는 구결은 한문을 한자음으로 읽으면서 구절 사이에 토를 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논어의 學而時習之不亦說乎문장에 토를 달아 學而時習之不亦說乎로 만들어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라고 읽습니다. 중국에서 한문을 읽는 방식 그대로 문장을 읽게 되죠. 이걸 음독구결(音讀口訣)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4세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음독구결로 한문을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13세기 이전에는 한문을 직접 우리말의 어순대로 읽을 수 있도록 토를 달았습니다. 원문을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로 읽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이죠. 이 방식을 석독구결(釋讀口訣)이라고 합니다.”

 

- 석독구결이 가지는 의미가 클 것 같습니다.

  “매우 크죠. 석독구결은 일종의 번역입니다. 주어진 한문을 한자음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 화()했으니까요. 기존에 번역 연구에서 우리나라 번역의 효시를 14세기 말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1973<구역인왕경(舊譯仁王經)>을 시작으로 1990년대 대거 발견된 석독구결 자료의 추정 연대는 10세기부터 13세기까지입니다. 번역의 역사가 400년 이상 당겨진 것입니다.

  석독구결은 번역사뿐만 아니라 문자사적으로도 의미가 큽니다. 이두나 향찰은 한국어를 문자로 기록했다는 측면에서는 가치가 있지만, 한문에 쓰이는 한자를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외형적으로 새로울 게 없습니다. 석독구결은 한자를 그대로 쓰지 않습니다. 석독구결의 한 종류인 자토석독구결(字吐釋讀口訣)은 한자를 변형한 구결자(口訣字)를 사용하고, 점토석독구결(點吐釋讀口訣)은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구결점(口訣點)을 사용합니다. 표의문자인 한자의 형태를 바꾸어 표음문자의 체계로 전환한 것이죠.

  흥미롭게도 석독구결의 구결자가 전해져 일본 문자체계가 만들어졌다는 학설을 일본 학계에서 제기했습니다. 구결자는 한자를 단순화한 것입니다. 일본에서 지금도 사용하는 가나 문자의 생성 원리와 생김새가 비슷합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신라의 스님이 일본에 전해준 구결자가 가나 문자의 원류가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 석독구결에도 종류가 있나요

  “구결자와 구결점의 사용에 따라 구분됩니다. 자토석독구결은 1973년 앞서 말씀드린 <구역인왕경(舊譯仁王經)>에서 처음 발견됐습니다. 구결자는 한자의 자형을 단순화하여 사용합니다

이렇게 바꾸는 식이죠. 이런 구결자로 토를 달고 한문의 어순을 우리말 어순으로 바꾸어 우리말 어휘로 읽습니다. 이는 음독구결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이 자료를 해독하는 데 2년이 걸렸습니다.

  1990년대에 자토석독구결의 자료가 쏟아져 나옵니다. 연구자들은 한국어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어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어휘체계나 문법체계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 이전까지는 고대국어 자료가 향찰과 이두밖에 없었습니다. 향찰은 매우 정밀한 표기이지만 남아있는 게 향가 25수밖에 없어 다 합쳐도 1000자가 넘지 않습니다. 자료가 너무 적어서 현재까지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같은 구절을 다르게 해독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두는 자료는 꽤 많지만, 문법체계를 이야기하기엔 언어학적 정보가 제한적입니다.

  반면에 석독구결은 문법 정보가 매우 정밀하게 표기돼 있습니다. 데이터만 확보되면 국어사를 새롭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1973<구역인왕경(舊譯仁王經)>이 나왔을 때는 획기적이긴 하지만 언어적 정보가 많지 않아 국어사를 다시 쓸만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1992년부터 새로운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국어사, 특히 문법사에 대해서 다시 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에 구결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구결학회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2000년 점토석독구결이 발견됩니다. 점토석독구결은 점이나 선 모양으로 새긴 구결점을 활용합니다. 토를 다는 대상 한자의 특정 위치에 점이나 선을 기입해 특정한 소리로 읽습니다. 예를 들어, 한 점을 한자의 왼쪽 아래에 찍으면 ‘()라고 읽고 오른쪽 아래에 찍으면 ‘()라고 읽는 식입니다. 선은 수평·수직·사선·역사선 형태로 활용합니다. 그것이 놓이는 위치정보와 점·선의 모양에 따른 형태정보를 조합해 경우의 수를 만들고, 각각의 경우마다 음가를 부여합니다. 자토석독구결과는 또 다른 문자체계가 나온거죠.

  점토석독구결은 <유가사지론> 8에서 처음 발견됩니다. 일본에서는 훈점(訓點)’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의 석독구결에 해당하는 표기체계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훈점을 연구하는 일본의 학자가 한국에도 훈점과 비슷한 문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구결학회에 자료 조사를 요청하면서 점토석독구결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좌)오코토점의 변별 위치 모형과 (우)점토구결의 변별 위치 모형
(좌)오코토점의 변별 위치 모형과 (우)점토구결의 변별 위치 모형

 

- 점과 선으로 문자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처음 발견하고 해독이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점토석독구결이 처음 발견됐을 때, 국내 학계에선 참고할 만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당시 연구자들은 일본의 훈점 자료에서 발견되는 오코토(ヲコト)점을 참고해서 점토석독구결을 해독하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큰 진전이 없었습니다. 현재 연구가 진행된 상태에서 보면, 훈점의 오코토점과 점토석독구결의 구결점은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죠.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저는 <유가사지론>의 구결점은 훈점의 오코토점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크게 2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첫째로, 한자의 자형을 사각형으로 가정할 때, 오코토점은 사각형의 테두리를 기준으로 10여 군데에 점을 찍습니다. 하지만 구결점은 위치를 그보다 훨씬 세밀하게 구분해 찍는 위치가 30 군데가 넘습니다. 최초 연구에서 구결점의 위치를 오코토점과 비슷하게 10~20 군데로 가정하니 제대로 해독이 되지 않던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오코토점은 한자의 형태가 어떤 모양이든 오코토점이 놓이는 위치가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가사지론>의 구결점은 한자의 자형에 따라 놓이는 위치가 크게 달라집니다. 구결점의 위치는 한자의 생김새에 의해 가변적으로 설정될 수 있고, 그 위치 변이의 패턴을 알아야 제대로 된 해독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제가 일본어를 전혀 몰라 오코토점에 관한 연구를 참고할 수 없었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입견 없이 점토석독구결에 접근할 수 있었던 거죠. 앞선 가설을 2002년에 제시하고 2년에 걸쳐 이를 입증했습니다. 지금 학계에선 제 주장을 정설로 받아들입니다.”

 

- 현재 차자표기와 국어사 연구의 미래는 어떤가요

  “처음 자토석독구결이 발견됐을 때, 연구자들은 열광했고 연구는 활발히 진행됐습니다. 점토석독구결 또한 국내 학계에서 전혀 보지 못한 새로운 문자체계로 기록돼 한국 문자사를 새롭게 써야 할 상황이 됐고 자료의 양도 자토석독구결보다 많아요. 하지만 점토석독구결은 해독이 어렵고 세밀한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아직 미지의 영역이 많이 남겨진 상황입니다. 또한 관련 자료도 계속 나오고 있어 이 방면 연구의 필요성과 수요는 충분합니다.

  만약 국어사에 관심이 있다면 수업도 들어보고 공부를 한 번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거기에서 재미를 느끼고 더 공부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찾아와도 좋습니다. 연구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습니다. 환영합니다.”

 

| 정용재 기자 ildo114@

사진 | 두경빈 기자 hayab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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