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인터스텔라>, 류츠신(劉慈欣)<삼체>, 테드 창(Ted Chiang)<네 인생의 이야기>. 문학계, 영화계에서 확고하게 자리잡은 장르 중 하나, SF(Science Fiction). SF는 일각에서 공상과학이라는 명칭으로 번역된다. 하지만 SF가 그리는 이야기는 현실적이지 못하거나 실현될 가망이 없는 것을 막연히 그려 봄이라는 공상과는 다르다. SF 연구자 다코 수빈(Darko Suvin)에 의하면, SF현실의 반영일 뿐 아니라 현실에 관한 문학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미디어에서 주요한 장르로 기능하는 SF 문학은 기존 문학 장르와는 다른 세계를 구축하며 현실을 넘어 가능성을 말 하는 문학으로 나아가고 있다.

현실을 뛰어넘으며, 현실을 반영하다

  SF의 정의는 다양하다. 그 중 가장 영향력 있는 SF의 주요 개념은 다코 수빈이 제시한 인지적 소외(cognitive estrangement)’. 인지적 소외는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관객 소외에서 발전한 개념으로, 독자들이 합리적 추론을 바탕으로 SF 속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의 차이를 깨닫고 이러한 차이를 통해 현실 세계를 성찰하게 하는 서사 기법이다.

  예컨대 미국의 SF 작가 어슐러 르 귄(Ursula K. Le Guin)의 소설 <어둠의 왼손>에는 인간과 달리 26일마다 특정 성별을 선택할 수 있는 외계 종족 게센이 나온다. 게센인들의 인간과 전혀 다른 문화는 독자들에게 인지적 소외를 불러일으키며, 독자들이 가졌던 성() 고정관념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지용(건국대 몸 문화연구소) 교수는 인지적 소외는 소설이 현 상황에 머무르지 않고 그 다음 상황으로 계속해서 나아가게 하는 대안적인 방향성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SF 작품은 하나 이상의 노붐(novum)’을 통해 인지적 소외를 만들어낸다. 라틴어로 새로운 것을 의미하는 노붐은 현실과 다른 세계임을 명확히 드러내는 촉매제를 뜻하며, SF는 이를 통해 현실과 구별되는 서사를 전개한다. 이지용 교수는 노붐은 서사와 세계관 자체를 추동하는 기술적 요소를 일컫는다쥘 베른(Jules Verne) 소설의 잠수함이 현재는 특별하게 생각되지 않 는 것처럼, 시대에 따라서 노붐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SF는 현실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 한편으로는 현실을 반영한다. 배명훈 작가의 소설 <타워>는 빈부격차가 심한 가상의 도시국가 빈스토크에서의 사건을 다루며, 소설 안에 현대 한국 사회의 문제를 투영한다. 모희준 SF 평론가는 “SF는 내용 속에 절묘하게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삽입한다가상의 어느 시점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안의 내용은 지금 우리의 삶과 다를 바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도구적·미적 가치 모두 가진 SF

  그간 SF 문학이 대중들에게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에서는 과학적 지식과 상상력을 함양하기 위해 SF 문학을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자주 등장했다. 첨단기술 등 과학 분야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창의력을 키워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SF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SF 팬들은 ‘SF를 도구적 효용성으로만 접근하려 한다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SF 연구자들은 SF 문학을 읽는 목적 역시 일반 문학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SF 문학은 문학 외적인 도구적 가치를 가짐과 동시에, 일반 문학과 마찬가지로 미적 가치 또한 가진다는 것이다. 박상준(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교수는 다른 문학 작품이 그렇듯 SF 문학을 읽는 목적 역시 다양하다각각의 SF가 보이는 특징들에 맞추어 즐거움을 누리거나, 현실을 반영한다는 맥락에서 드러나는 세계관을 음미하면 된다고 말했다. 김보영 SF 작가도 SF의 도구적 효용성에 대해 “SF 문학을 폄하하는 사람들에 대응하기 위해 SF 기획자나 연구자들이 실용성과 효용성을 말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면서도 문학을 통해 한 번의 인생으로 접할 수 없는 다양한 삶을 간접체험할 수 있지만, 그런 목적을 생각하며 문학을 읽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초창기의 SF는 이야기를 통해 과학 지식을 보급하고, 미래를 보여주는 예언적 비전을 드러내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이제 현대 SF 문학의 주요한 가치 중 하나로는 사고실험이 꼽힌다. SF는 다양한 가정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변화에 대한 사고실험을 전개한다. 그리고 급속도로 변화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변화에 대해 성찰하고, 가치관을 함양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준다. 고장원 SF 평론가는 “SF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통해 인류 문명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토탈 문학이라며 과학기술의 발전이 어떤 사회적 영향을 끼치고, 그 부작용은 무엇이 될지 인간이 성찰할 수 있게 해준다고 강조했다.

장르문학과 본격문학의 틀 허물며 성장해

  현재 SF는 추리 소설, 판타지 소설과 같은 장르문학중 하나로 분류된다. 장르문학은 본격문학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보통 소설의 구성이나 서사가 일정한 형태와 공식을 갖춘 문학을 가리킨다. 하지만 <멋진 신세계> 등 유럽에서 태동한 초창기 SF 문학은 장르문학보다는 작가의 문제의식을 전달하기 위한 일종의 계몽문학에 가까웠다.

  20세기 초 미국에 이러한 초창기 SF 작품이 소개되자, 미국 출판업자들은 SF의 상업성에 주목해 일정한 형식을 띤 아류 작품을 연달아 출판하게 된다. 고장원 SF 평론가는 미국의 상업출판시장에서 SF 작품은 양적으로 크게 늘어났지만, 질적 수준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독자들도 SF는 공식성이 강한 소설이라 인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 이러한 흐름에 반해 SF 문학의 질적인 수준을 높이자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고, 작가들도 이에 부응해 문학성과 깊이, 문장력이 향상된 SF 문학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SF는 본격문학과 비교해도 내러티브, 문체 등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그간 본격문학이 우세했던 한국의 문학계에서는 SF를 비롯한 장르문학을 본격문학에 비해 낮잡아 보거나, 둘 사이에 거리감을 두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SF 장르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으며, 문학성이 높은 SF 작품이 연이어 출판되고 문단작가가 SF장르의 형식을 빌려오는 등 본격 문학과 장르문학의 틀이 점차 흐려지고 있다. 이에 SF를 장르문학의 틀에서만 규정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박상준 교수는 “SF는 분명한 장르문학이지만, 본격 문학과 장르문학의 이분법은 1990년대 들 어 시장을 통해 서서히 무너져 왔다이분법을 고수하거나 SF를 장르로 한정하면서 그 의의를 좁게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모희준 평론가 역시 어떤 SF는 본격문학보다 더 본격문학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있고, 연구하기에 따라서는 문학적으로 훨씬 다양한 성과를 찾아낼 수 있다작가들부터 본격문학은 고상하고 ‘SF 문학은 대중적이라 고상하지 못하다는 편견을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정환기자 ecrit@

일러스트 | 장정윤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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