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4 16:41 (수)
비상하는 한국의 창작 SF, 남아있는 과제는?
비상하는 한국의 창작 SF, 남아있는 과제는?
  • 이정환 기자
  • 승인 2019.10.06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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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 <저 이승의 선지자> 등 김보영 SF 작가의 소설 3종의 판권이 미국의 출판 회사에 팔려 화제가 됐다. 또한 7월 온라인 서점 예스24’에서 진행한 독자 투표 ‘2019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에 선정된 10명의 작가 중 SF 작가 3명이 포함되는 등 한국의 SF 문학이 최근 국내외에서 각광받고 있는 분위기다. 무관심을 떨치고 새롭게 빛을 보게 된 한국 SF, 그 진흥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대중 계몽의 도구로 이용된 초기 한국 SF

  한국에 최초로 소개된 SF 문학은 쥘 베른(Jules Verne)의 작품을 번안한 <해저여행기담>으로, 1907년 일본 유학생들의 잡지 <태극학보>에 실려 알려졌다. 이를 시작으로 동 작가의 소설을 번안한 <철세계>,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원작의 <80만 년 후의 사회> 등 초창기 한국의 SF는 외국 SF 문학의 번안소설 형태로 소개되면서 등장했다. 당시 번안소설 작가들에게는 소설을 통해 과학 지식을 대중에게 보급하고, 조국의 근대화와 계몽을 실현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이지용(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초창기 SF에는 대중성보다는 계몽성이 강하게 나타난다카렐 차페크(Karel Capek)의 희곡을 번역한 박영희의 <인조노동자>처럼 사회주의 프로파간다를 위해 소설을 도입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1929년 한국의 첫 창작 SF인 김동인의 <K박사의 연구>가 등장하지만, 이후 분단과 독재를 거치며 한국의 창작 SF는 활성화되지 못했다. 이데올로기 등 거대담론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대중적인 장르문학보다는 현실 참여적인 리얼리즘 문학이 우세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박상준(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교수는 “1980년대까지 한국 문학의 주류는 당대의 사회문제에 응전하는 현실 참여적인 문학이 될 수밖에 없었다“1990년대에 들어서야 장르문학 이 시차를 두고 진흥의 국면을 보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 SF 문학이 부각되지 못한 데에는 과학을 국가 발전을 위한 도구로만 삼는 인식도 작용했다. 과학에 대한 인식이 부국강병을 이루려는 도구로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모희준 SF 평론가는 “1960~80년대 사이 SF문학이라는 제도권 밖에 머물러 있는 장르였다이 시기 과학은 국가적 발전을 이루기 위한 도구였으며, SF의 역할은 과학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교육적인 측면이 강했다고 말했다.

한국 SF르네상스가 시작되다

  하지만 1965년 한국 최초의 창작 SF 장편 소설인 문윤성의 <완전사회>가 출판되고, 한낙원 작가의 SF 소설이 아동·청소년 문학으로 인기를 얻는 등 SF 문학에 호의적이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도 한국의 창작 SF는 계속 이어져 왔다. 이지용 교수는 성인용 SF 소설의 창작은 활성화되지 못했지만, 대중 과학잡지를 통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SF 작품은 계속 소개됐었다이는 1990년대 온라인 SF 창작의 기반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SF 창작은 1990년대 등장한 PC통신을 계기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PC통신을 통해 SF 동호인들이 의견을 교류할 장이 형성됐고, 김창규, 듀나 등 PC통신 상에서 작품 집필을 시작한 SF 작가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 한국의 SF는 소수 팬덤이 향유하는 문화의 영역을 넘어서 일반 문학계로 진출하기 시작한다. 기존의 등단 작가들 중에서도 SF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등장했고, 2004년부터 3년 동안 김보영, 배명훈 작가 등을 배출한 과학기술창작문예를 시작으로 한낙원과학소설상 등 SF 문학상이 제정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미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SF 문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지용 교수는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계기가 돼 과학기술의 미래와 한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고, 그 해답을 SF에서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아작’, ‘허블SF 전문 출판사와 출판 브랜드가 등장하며 SF 작품의 출판 기회도 늘어나고 있다. 2018년에는 SF계 내에서도 한국SF협회나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등 관련 단체가 출범하는 등 한국 SF 창작 발전이 꾸준히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SF 문학의 특징으로 현실의 반영을 꼽는다. SF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나 문제를 들춰내는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전홍식 SF&판타지 도서관장은 한국의 창작 SF는 사회를 고발하고, 사회의 문제점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경향이 강하다문제를 제기하는 수준으로 끝나는 일반 문학과 달리, SF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특성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해답을 제시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지용 교수는 한국 사회 내의 부조리를 짚는데 한 국 창작 SF의 특징이 보인다어떤 유행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소재를 자유자재로 변용하는 것도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더 많은 창작 공간과 연구 필요해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남은 과제들도 많다. 우선 SF 장르에 대한 비평과 연구의 역할이 강조된다. SF 장르의 발전을 위해서는 작품의 문학적 장점을 규명하고 이를 알리는 비평이 필요하지만, 그간 한국의 창작 SF에 대한 비평은 작품 수가 부족해 활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상준 교수는 비평가들 대부분이 한국 창작 SF를 별로 접해 보지 않아 왔기에 아직 우리나라의 SF 비평은 대단히 취약한 편이라며 “SF 비평이 활성화될수록 SF의 발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지용 교수도 비평을 통해 작품의 장점을 찾고 작가들이 이를 극대화하는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비평은 장르를 발전시키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SF 문학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SF 작가들이 작품을 안정적으로 창작할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보영 작가는 “SF 문학의 성장을 위해서는 작가들에게 충분한 지면과 최소한의 생계유지가 가능한 원고료, 문학상,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창작 환경뿐 아니라, SF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게재하고, 작품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교류할 공간도 요구된다. 웹진과 같이 작품에 대해 독자들의 활발한 의견을 받을 수 있는 장은 SF 작가들의 창작 역량을 강화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SF와 판타지 작가들의 창작과 리뷰 공간이 돼주는 환상문학 웹진 거울이나, 출판사 황금가지에서 운영하는 플랫폼 브릿G’가 대표적이다. 전홍식 관장은 공모전은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편하게 의견을 주고 받을 공간이 있어야 한다작가들과 팬이 번역이나 SF월드콘 등에 참가해 외국에 적극적으로 한국 SF의 장점을 알리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작가들의 지속적인 활동과 팬덤의 유입으로 무관심의 그늘에 가려졌던 한국 SF는 점점 성장 중이다. 창작 환경 개선과 교류의 장 활성화를 통해, SF 문학의 더 많은 질적·양적 발전이 기대되고 있다.

| 이정환기자 ecrit@

사진 | 전남혁기자 m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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