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진귀한 사건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서구 대중음악의 최대 각축장인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앨범이 나오다니 많은 이가 놀랄 만했다. 지난해 출시된 방탄소년단의 세 번째 정규 앨범 <Love Yourself ‘Tear’>는 한국 대중음악계는 물론 전체 팝 음악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썼다. 예상치 못한 쾌거이자 이변이었다.

 매체들은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등극을 대서특필하면서 한국어로 된 작품이라는 사항을 부각했다. 많은 신문과 방송이 한국어 노래들로 외국 음악팬들을 사로잡은 것이 대단하고 고무적인 성과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Love Yourself ‘Tear’>는 온전한 한국어 앨범은 아니다. 영어 단어와 문장이 수시로 나온다. 열한 편의 수록곡 중 전하지 못한 진심’, ‘134340’, ‘낙원을 제외한 여덟 곡은 영어 제목을 내걸었다. 때문에 영어가 모국어이거나 영어를 자국어에 버금가는 언어로 배우는 외국인들은 아주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앨범은 서양인들이 쉽게 받아들일 요소를 어느 정도 지니고 있었다.

 방탄소년단 말고도 많은 아이돌 그룹이 가사에 영어를 들인다. 큰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외국 시장에 진출해야 하고, 외국 음악팬들에게 빠르고 광범위하게 접근하는 데에는 영어가 가장 좋은 교각이 되는 까닭이다. 한국어로는 케이팝 애호가들을 매료할 수 있지만 영어를 쓰면 더 많은 이의 관심을 끌 가능성을 획득하게 된다.

 영어 혼용은 비단 아이돌 그룹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어 단어, 문장을 곳곳에 두른 가요는 무수히 많다. 우리말보다 영어의 비율이 높은 노래도 허다하다. 모든 수록곡이 영어로만 된 음반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주류, 인디 가릴 것 없이 현재 가요계의 영어 사랑은 극진하다 못해 끔찍하다.

 이런 경향은 1980년대 후반부터 활발하게 나타났다. 이미 영어를 섞어서 노랫말을 짓던 일본 대중음악에 영향을 받아서, 혹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요량으로 영어 단어나 문장을 넣는 일이 늘어났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로는 소방차의 통화중과 이정현의 그 누구보다 더, 후자에 해당하는 노래로는 윤항기의 웰컴 투 코리아와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을 꼽을 수 있다. 1990년대 넘어와서는 세계화에 따른 영어 교육 활성화, 재미교포들의 가요계 유입 증가 등으로 가사에서의 영어 사용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영어 혼용은 힙합에서 특히 빈번하게 이뤄진다. 어떤 래퍼들은 한국어로 운율을 연출하기가 쉽지 않아서 영어를 쓴다고 변호한다. 하지만 피타입은 우리말만으로도 문장 전체에 운율을 생성할 수 있음을 명쾌하게 증명했다. 또한 요즘 래퍼들의 노래를 들여다보면 한국어와 같은 뜻의 영어 단어를 덧붙이거나 아예 라임과 무관하게 삽입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결국 이는 영어를 남발하는 대세의 무분별한 수용, 무의식적인 언어 사대주의의 발현에 지나지 않는다.

 한글날 즈음되면 여러 매체와 기관이 한글, 우리말을 올바르게 사용하자는 운동을 벌이곤 한다. 언어 파괴, 잘못된 표현이 난무하니 한글날만이라도 그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요에서의 영어 범람도 한국인으로서 고민해 봐야 할 답답한 상황 중 하나다. 많은 이가 한류라는 성과를 우대하거나 타성에 젖어 영어 사용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우리의 언어를 잃어 가고 있는 것, 정말 무서운 일이다.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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