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고등학교 후배를 대상으로 국어를 가르치다 우연히 만난 시 한 작품이다. 제목을 보고 시인이 우리를 위로해줄 거라 기대한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시인은 고통을 버티라고 한다. 고통이나 외로움 모두 일시적일 것이고 당신을 도와줄 손이 있다면서, 시인은 우리를 고통에게로 밀어내고 있다. 뿌리 깊은 벌판에 세우고 있다.

 이 시를 본 당신은 아마 두려울 것이다. 당신이 느끼는 그 두려움이 바로 필자가 이 시를 고대신문에 가져온 이유이다.

 필자는 올해 학내 한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학기 초부터 지금까지 안암은 그야말로 기자들의 놀이터였다. 학교의 회계비리 의혹부터, 입실렌티 준비 과정에서 응원단을 둘러싼 의혹, 조국 장관의 딸과 관련된 의혹, 그리고 총학생회 탄핵 추진 과정까지. 수많은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캠퍼스를 뒤엎고 있었다. 하지만 사건을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학우들이 이렇게 중요한 이슈들에 생각보다 관심 없다는 사실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그리고 좁혀서 생각해보면 오늘날 고대 캠퍼스는, ‘사서 고생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본인의 삶으로도 너무나 힘들고 지쳐서 더 큰 사회적 고통은 떠안지 않으려 하는 경향. 본인이 꼭 나서지 않아도 될 일은 나서지 않으려는 마음. 이런 마음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문제는 단 하나도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수험생 시절 모두 흔들리며 성장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걸어간 결과 목표했던 것을 이뤄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많이 힘들더라도, 이리저리 흔들리더라도, 고대를 위해 우리 모두 흔들려보자. 상한 영혼인 우리가 계속해서 흔들리면, 어딘가에서 마주 잡을 손 하나가 우리에게 올 것이다.

 

신정원(미디어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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