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단편 <>(1885)에는 첫사랑을 향한 한 사내의 아련한 서사가 녹아 있다. 산정에서 양을 치는 목동에게 정기적으로 식량을 가져다주는 아주머니가 휴가를 가자, 주인집 아가씨가 직접 와서 목동을 만난다는 설정이 소설의 전반부를 이룬다. 후반부에는 우연한 이유로 집에 가지 못한 그녀와 밤을 지새우며 그녀에게 별 이야기를 건네는 목동의 한없는 설렘과 감동의 순간이 나타나 있다. “저 숱한 별들 중에 가장 가냘프고 가장 빛나는 별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 있노라고.”라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야말로 모든 첫사랑의 순간적 충일감과 현실적 불가능성을 낭만적으로 잘 전해주는 대목일 것이다.

 이처럼 모든 청춘을 설레게 하고 잠 못 들게 하는 첫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 누군가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어떤 대상에게 느낀 특별한 감정을 말하는 것일까? 그러나 12세기 서양에서 발명된 새로운 개념으로서의 첫사랑은 당연히 처음으로 느낀 사랑의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비록 누군가를 사랑한 경험 유무와 관계없이, 그동안의 몸과 마음의 상태와는 전혀 다른, 그동안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뛰어넘는 충격과 흡인력으로 찾아온 그 무엇이다. 생애를 송두리째 바꾸어버린 그 순간이 있은 후, 다른 충격들의 뇌관으로 장착되면서 가장 강력한 원체험으로 각인되는 것이 말하자면 첫사랑이다.

 첫사랑에는 세상과 구별되는 순수와 무지가 개입한다. 영어로 innocence쯤 될 것 같다. 세계에 물들지 않은 순수와 세계의 실상에 대한 무지가 첫사랑의 원천이요 발생 지점인 셈이다. 거기에 대상을 향한 신비로움이 부가되면 첫사랑은 자기 보호라는 생명의 본능을 허물면서 타인으로 흘러들어 가려는 헌신과 희생의 형식으로 몸을 바꾼다. 하지만 우리는 첫사랑의 서사가 순간적 충만함을 통해 감격과 황홀을 가져다주지만 결국에는 사랑의 불가능성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음을 기억한다. 온전한 사랑은 상호적 성격을 띠는 것인데, 첫사랑의 서사는 불균형의 짝사랑이나 외사랑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대체로 그것은 사랑의 추구와 좌절 그리고 그 이후를 애잔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의해 반어적으로 완성될 뿐이다.

 첫사랑의 고전들 가령 <로미오와 줄리엣>, <소나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애너벨 리> 등은 모두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우리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그들의 사랑은 승인되기보다는 운명의 개입으로 인해 좌절 또는 유보되었기 때문에 더욱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만큼 첫사랑의 서사는 대부분 사랑의 결여 형식에서 태동한다. 이때 우리는 왜 사랑의 결여형이 완성형보다 더 깊은 감동과 리얼리티를 주는가를 심층적으로 질문하게 된다. 그것은 첫사랑의 순간적 충일감과 현실적 불가능성이, 결핍과 불모의 삶을 위안하고 견뎌가게끔 하는 항체를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부여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잘 알듯이, 생명체로서의 존재증명에 사랑보다 더 분명하고 강렬한 것은 없다. 우리 시대처럼 교환가치가 지배하는 때에, 우리는 첫사랑의 서사가 환기하는 순수 원형에 대한 매혹까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사랑은 순진과 무구에서 생성되어 타인의 삶을 받아들이는 헌신과 희생의 형식으로 완성되어간다. 비록 순수의 흔적으로 남는다 하더라도 이는 우리 삶에 주어진 배타적 특권이자 책무일 것이다.

 

유성호 문학평론가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