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정본교 강사·독문학
송민정
본교 강사·독문학

 오늘날 유럽연합 내에서 독일은 유럽경제를 견인하는 경제적 선도역할을 넘어 유럽의 연대성과 도덕성을 대변하는 국가로 부상하였다. 전범국가의 오명을 씻고 극적인 반전을 이룬 근간으로 경제적 기적과 더불어 균형 잡힌 정치의식과 사회공동체적 시민의식이 꼽힌다. 이는 과거역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자기성찰의 결과이기도 하다.

 1970년대 말 아데나우어 총리의 장기집권에 맞서 자유와 진보를 요구하는 좌파 학생운동이 등장하며 독일사회는 심각한 분열과 갈등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 때 좌파와 우파의 학자들이 1976년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작은 마을 보이텔스바흐에 모이게 된다. 이 자리에 모인 다양한 정치적 성향의 학자들은 정치교육’-민주시민교육-의 정치도구화를 막고 좌우를 통합하는 교육방식을 구상하는 논의를 진척시켰다. 1년 후 그 내용을 정리한 책에서 소개된 몇 가지 원칙이 보이텔스바흐 합의 Beutelsbacher Konsens’이다. 올바른 정치교육을 위한 최소합의로서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교화금지의 원칙, 논쟁재현의 원칙, 이익인지의 원칙을 제시한다.

 첫 번째 교화금지 원칙은 어떠한 식으로든 교사가 학생들에게 특정 입장을 교조적이거나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 독일의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던 군국주의적 교육에 대한 반성과 직결된다. 두 번째 논쟁재현 원칙은 삶의 현장 속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입장의 논쟁적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익인지 원칙은 논쟁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이해 중립적인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관점에서 정치적 쟁점을 판단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최근 몇 달간 우리 사회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두고 벌어진 국론 분열과정은 진영논리와 이념적 선명성을 둘러싼 갈등의 메커니즘이 대한민국 전 분야로 확대 재생산되는 양상이었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여지가 없는 정치권의 공방과 무차별적 언론보도, 흑백논리에 갇혀 감정적인 반응에 급급한 국민들의 태도가 그것이다.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자각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어느 때 보다 아쉬운 시간이었다. 민주시민교육을 목표로 한 독일 정치교육의 성공적인 정착은 동·서독의 이념적 대립을 극복하는데 구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학생들에게 균형 잡힌 시각에서 정치교육을 수행하기 위한 형식적 합의의 성격으로서, 학생들에게 개별적인 사적 이익과 공적 역할의 양립 가능성을 상기시킨다. 두 번째로 대립적인 입장을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중재할 가능성을 보여주며 아울러 이질적인 의견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개방적 자세를 요청한다. 세 번째로 학생 자신의 이익과 상황에서 출발하는 논쟁방식은 개인주의로 흐를 여지가 있지만, 학생들이 처한 실제적인 입장과 눈높이를 반영하는 양방향적인 소통의 성격을 내포한다.

 갈등의 해소는 이해 당사자 일방의 타당성을 확정하는 데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갈등을 언제나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정하고, 다양한 주체 간의 입장 차이를 수용하는 민주적 담론 속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절대적 우위 내지는 도덕적 명분만을 고집하여 절충점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면 갈등은 더 심화될 뿐이다. 건강한 사회공동체의 실현은 적절한 타협과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절차적 민주주의와 연동한다. 이처럼 민주주의적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필요조건들이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함축되어 있다. 이는 초당적인 입장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정치권의 아전인수식 논리와 배타적인 당파성으로 점철된 현실을 지나는 중이다. 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교육이념을 통해 사회 모든 분야에서 건강한 공론장의 형성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국민들 개개인이 이러한 공론장에 참여하고 또한 그 과정에서 사회시민으로서 덕목을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사회 갈등해소의 정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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