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산책

                                                                                                              류세현

 

  우리가지는이야기다.

  가질 수 없는 것들을 대비해 토끼는 굴을 판다. 가진 것들 역시 굴을 판다. 그 굴속

에서 사는 것들은 다음 거래를 기약한다. 혹은 다음 거래를 기약하며 산다. 파는 것

도 사는 것도 아닌 이들은 뭉개지는 연기처럼 가만히 떠돌 뿐이다.

  눈은 제 몸 속에 그림자를 지고 있다. 밟혀서 녹기 전 제 몸속의 먹물을 터트리며

죽는다. 눈이 오는 날, 눈이 떨어져야만 하는 날엔 땅에 물기가 진다. 젖은 신발은 걸

어가는 사이 마르기 시작했다. 내 치기를 말리지 못했던 때를 기록한다. 이 계절과

함께 젖고 싶었던 사람을 떠올렸다. 그 사람의 이름을 기록에 넣는다.

  햇빛은 제 무게가 무거워 노을로 진다. 햇빛을 반사하는 달빛에 무거워지는 하늘이

, 조금 더 달빛에 찔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멈춘다. 무너지는 내가 느껴

지는 순간, 밟힌 눈물들은 얼기 쉽다. 단단히 뭉쳐진 덩어리들 속에서 눈은 날개를

접는다. 앞으로 흩날릴 일이 없을 것이다.

  새들은 기지개를 편다. 버려진 의자는 그림자를 지고 있다, 죄 많은 이처럼 결국 열

등의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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