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1 15:10 (목)
“법으로 강제할 정도로, 기록관리 수준이 높지 않습니다”
“법으로 강제할 정도로, 기록관리 수준이 높지 않습니다”
  • 박성수 기자
  • 승인 2019.11.03 2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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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건홍 국가기록관리위원장 인터뷰
곽건홍 위원장은 "성공하고 실패한 국정운영의 경험 자체가 기록"이라고 말했다.
곽건홍 위원장은 "성공하고 실패한 국정운영의 경험 자체가 기록"이라고 말했다.

 

  국가의 기록은 정부의 행정을 남기는 증거이자 당대의 사회를 담는 기억이다. 유럽의 경우 혁명 이후 관리체계를 정비한 프랑스를 시작으로 국가기록 관리가 19세기 말 표준화됐다. 우리나라는 1999년에 이르러 서야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기록관리법)’을 제정하고 이듬해 시행한 만큼 기록관리체계가 아직까지는 부실하다. “우리나라의 낙후된 국가기록 관리체계는 시스템의 부재와 인식 부족이 결합한 결과라고 지적하는 곽건홍 국가기록관리위원장을 만나 국가기록체계의 현재, 그리고 나아갈 방향을 짚었다.

- 우리나라 국가기록관리체계 중 어떤 부분이 가장 취약한가요

  “전체적인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각 공공 기관마다 기록(records)을 관리하는 기록관은 있어도 국가기록원, 국회의 국회기록보존소, 사법부의 대법원기록보존소 같은 제대로 된 아카이브(archives) 기관이 몇 개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는 기록관리에 있어서 일본의 영향을 받았는데 일본은 서구식 아카이브 개념을 도입하지 않고 각 공공기관에서 독자적으로 기록을 관리했어요. 그러한 방식이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 그대로 이어진 거죠. 1999년 기록관리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국가적인 차원의 기록관리가 중요하다는 걸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또,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성장주의를 강조했는데, 이게 효율적 행정을 추구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문서관리는 효율적 행정이라는 관점에서는 중요한 업무가 아니었어요. 일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기록을 생산한 담당자나 담당 부서에서 임의로 그것을 폐기해도 전혀 문제 되지 않았던 거죠.”

- 1999년에 이르러서야 기록의 체계적 관리를 위한 기록관리법이 제정됐습니다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넘어가면서 행정의 책임성과 투명성이 정부의 핵심과제로 떠올랐어요. 정부기관은 자신들이 한 행정 행위를 설명할 의무가 있습니다. 열린 정부를 지향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특 징이기도 한데, 기록관리는 이런 측면에서 결국 민주주의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합니다.

  기록관리법의 핵심 내용은 공공기관 마다 기록관(records center)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1인 이상의 전문가를 배치해야 한다는 겁니다. 최근에는 공사나 공단 쪽으로도 전문가가 많이 배치되고 있어요. 2006년 기록관리법이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로 개정되면서 지방 아카이브 설치를 의무화하기도 했습니다. 의무 조항임에도 지자체들이 예산이나 조직 문제를 들며 미루고 있었는데 그나마 작년에는 경상남도기록원이, 올해는 서울기록원이 개관했습니다.

  기록관리법은 기록의 생산 의무를 규정하고, 기록 폐기의 절차적 정당성을 보장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생산이 안 되는 기록이 회의록이에요. 국무회의록 또는 대통령이나 지자체장 같은 주요 직위자들의 방문객 명단, 일지, 대화록을 남기도록 법으로 강제했습니다. 전 세계에 이런 법을 규정하는 나라가 몇 없어요. 이렇게 법으로 강제해야 할 만큼 우리의 기록관리 수준이 높지 않습니다.”

- 국가기록관리위원회의 구성 배경이 궁금합니다

  “내셔널 아카이브의 독립성 때문입니다. 참여정부가 기록관리 혁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국가기록원의 독립성, 정치적 중립성 문제가 대두됐어요. 우리나라 국가기록원은 행정안전부 소속이어서 장관의 명을 듣게 돼 있고 독자적 인사나 예산의 권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종전에는 행정 관료들이 주로 1년 정도 머물다가 가는 곳이었죠.

  책임 있는 행정을 위해 조직을 어떻게 구성할지 논의하면서 국가기록원의 위상을 강화하고 부서를 늘리자는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의 제안이 선택됐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의결권은 없고 심의권만 가지는 일종의 자문위원회 형태의 기구를 만들게 됐고 그게 바로 지금의 국가기록관리위원회입니다. 보통 국가기록원이 안건을 올리고 위원회는 해당 안건을 심의하는 형태예요. 하지만, 위원회는 의결권이 없어서 국가기록원이 위원회의 결정을 수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국가기록관리위원회의 실질적 위상은 매우 낮다고 볼 수 있죠.”

- 위원회에서 최근 가장 이슈가 된 안건은 무엇인가요

  “사회적으로 가장 이슈가 된 개별대통령 기록관 설치문제입니다. 참여정부가 전자적으로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동시에 기록을 남기는 e지원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책임 있는 행정이 가능해졌어요. ‘몇 시 몇 분에 무엇을 결재했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의 핵심 기록들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참여정부의 대통령기록이 나중에 여러 차례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됐어요. 후임 정부는 학습 효과를 얻었을 겁니다. 그렇게 출범한 정부가 청와대에서 대통령 기록을 철저히 남길 수 없었겠죠.

  조선왕조실록이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실록의 열람 자체를 철저히 금지했기 때문이죠. 이른바 기록을 통한 사화(士禍)’가 발생할 수 있어서 열람을 금지했던 건데, 시대가 달라진 지금도 그 문제는 똑같이 존재합니다. 이런 우려가 개별기록관 설치의 출발이었어요. 개별대통령기록관을 설치하면 기록들을 일정 기간 잘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던 거죠. 하지만, 논란 끝에 대통령기록 관리제도의 올바른 대안 모색이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정쟁만 남았습니다. 이 점이 아쉽습니다.”

- 국가의 기록,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국가기록은 범주가 넓습니다. 사실 법률에서는 국가기록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요. 정부와 같은 공적 기관에서 생산한 기록을 공공기록이라 정의하고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공기록과 사회의 기록을 합친 게 국가기록이라고 볼 수 있죠.

  대표적으로 캐나다에서는 토탈 아카이브 (total archives)’라고 사회의 전반적인 기록을 남기려고 시도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핵 폐기물을 처리하는 방폐장을 설치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정부의 기록에는 정책결정과 집행기록은 남아도 시민사회의 기록은 남지 않을 겁니다. 그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캐나다의 내셔널 아카이브는 정부와 시민 간의 의사소통 과정 기록도 수집해요.

  사실 아카이브란 게 어느 분야든 적용될 수 있습니다. 외국에는 LGBT 아카이브, 흑인 아카이브, 여성 아카이브 등 민간 아카이브 조직들이 다양해요. 그런 기관들이 많아지면 결국에 설립 목적에 따라 각 분야의 기록이 방대하게 수집될 거고, 전체적으로 보면 그런 기록들이 국가의 기록을 구성하는 단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기록관리법)’이라는 명칭에서 공공을 빼고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라는 기본법을 만들자는 제안을 한 적도 있습니다. 이 처럼 사회의 주요한 기록도 법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박성수 기자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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