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칙은 학생사회 집행부와 의결기구의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이번 제51대 서울총학생회 ‘SYNERGY’(회장=김가영, 서울총학) 총학생회장단 탄핵 정국을 겪으며 서울총학생회칙 규정상 미비한 부분이 상당수 드러났다. 탄핵 절차는 회칙에 따라 진행됐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모순투성이회칙 제107

  탄핵 정국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회칙 제107조였다. 회칙 제107조는 탄핵 절차를 규정한다. 탄핵안의 발의 조건 연서 심의 절차 탄핵안의 학생총회·학생총투표 부의안 심의를 위한 임시 전학대회 소집 절차 임시 전학대회 의결 방법 등 탄핵 절차의 대부분이 회칙 제107조에 명시돼있다.

  회칙 제107조는 201793일 회칙 전부개정 때 개정됐다. 당시 탄핵안 연서 심의의 주체를 중앙운영위원회(중운위)로 명시하는 규정이 새롭게 추가됐다. 2016년 제48대 안암총학생회 :자리’(회장=박세훈)에 대한 탄핵안 발의 당시 연서를 심의하는 기구가 규정돼 있지 않아 회칙 해석 주체가 누구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기 때문이다. 다만 회칙 해석 주체를 명확히 해도 문제가 남았다. 회칙 자체가 모호하고 명확한 해석 기준도 없기 때문이다.

  회칙 제1074항은 탄핵안이 발의될 경우 중앙운영위원회 의장은 회의를 소집하여 제2항의 연서를 심의한다는 내용이다. 탄핵안 연서 심의 시점을 탄핵안 발의이후로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탄핵안 발의 시점을 두고 중운위원 간 의견이 많이 엇갈렸다. 발의 시점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보니 연서의 유효성과 상관없이 연서가 중운위에 전달됐기 때문에 탄핵안이 발의됐다는 의견과 연서의 유효성이 먼저 검증돼야 탄핵안이 발의됐다고 볼 수 있다는 의견이 충돌했다. 탄핵안 발의 시점에 따라 총학생회장단의 직무 정지 시기가 결정되기에 더욱 격렬한 공방이 오갔다. 이인성 국제학부 학생회장은 탄핵안이 발의된 시점이 언제인지는 탄핵 정국에 수많은 혼란을 가져왔다관련 회칙의 정비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회칙의 여러 지점이 모호하다 보니 중운위원들이 회칙 해석을 위한 체계적이지 못한 논쟁을 벌이는데 회의의 오랜 시간을 썼다.

  ‘5일 이내 전학대회 소집규정도 많은 논란을 낳았다. 서울총학생회칙 제1075항에 따르면 중운위는 탄핵안 발의 5일 이내에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를 소집해야 한다. 전학대회 소집을 위해선 개의일 5일 전에 소집을 공고해야 한다. 회칙을 어기지 않으려면 탄핵안이 발의된 당일에 소집공고를 내야만 한다. 실제로 중운위는 연서 심의를 위한 임시 중운위가 소집된 104일 탄핵안이 발의된 것으로 결의했지만, 회의가 자정을 지나 다음날까지 이어지며 회칙을 어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했다. 백범창 생명대 학생회장은 회칙이 부분적으로 개정되다 보니 연관 조항들끼리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긴 것 같다회칙을 전체적으로 검토하며 개연성을 맞추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재진 자유전공학부 학생회장도 회칙이 명확히 규정해야 할 부분을 놓치고 있다의결기구인 중운위에서도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개인정보보호 규정도 없어 난감

  어려운 과정을 거치며 중운위원들은 탄핵안이 발의된 것으로 결론짓고 탄핵 연서 심의 단계로 넘어갔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회칙에 개인정보보호 관련 규정이 없어서다. 탄핵 집행부는 서명자의 개인정보 제공동의를 받지 않은 채 연서를 중운위에 전달했다. 연서자의 개인정보제공동의가 없다 보니 중운위는 연서자들의 정·준회원 여부를 검증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탄핵 집행부 윤덕기(문과대 국문15)씨는 연서명을 받으며 나름대로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지만, 관련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 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자체적으로 탄핵 연서의 유효성을 검증하기 어려웠던 중운위는 학생처의 도움을 받았다. 학생처 측에선 처음엔 개인정보제공에 난색을 보였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최대한 협조한 덕에 연서의 유효성을 검증할 수 있었다. 학생지원부 이장욱 차장은 개인정보 관련 규정은 점점 더 엄격해지는 추세라며 누구나 개인정보와 관련해 피해자가 될 수 있어서 학교 구성원 전체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울총학생회칙 사무처리세칙의 연서 서식에 개인정보제공동의 관련 문구를 추가하면 앞으로 이와 같은 문제가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김가영 서울총학생회장은 학칙 혹은 회칙상 미비한 점을 보완하는 방법은 충분히 찾을 수 있다규정이 부재하거나 미비한 점을 제도적으로 보완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회칙 관리·개정하기 위한 노력 필요해

  현재 회칙 해석은 주로 중운위에서 담당하고 있다. 회칙 해석에 문제가 발생하면 규정상 회칙해석위원회를 소집할 수 있지만 중운위와 구성이 같아 사실상 사문화 됐다. 회칙과 관련한 독립된 전담기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연세대 총학생회는 법제위원회라는 상설기구에서 회칙의 개정과 해석 관련 업무를 처리한다. 연세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작년 비대위 체제로 총학생회가 운영되며 회칙 해석과 관련한 논란이 많았다법제위원회를 독립된 기구로 만들어 회칙의 해석 및 관리를 체계적으로 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본교 총학생회에서도 회칙 전담기구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50대 총학생회 ‘ABLE’(회장=김태구)은 공약으로 자치법제 전담기구 상설화를 제시한 바 있다. 특별위원회까지 구성하며 이를 실행하려 했으나 결국 무산됐다. 해당 기구의 지속성이 담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태구 전 총학생회장은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려면 최소 1학기 이상의 수습위원으로서의 활동과 그 이후의 활동이 담보돼야 한다법제위원회는 그에 맞는 동기부여가 부족했었다고 밝혔다.

  회칙을 전담하는 상설기구가 오히려 회칙 해석에 대한 절차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는 우려도 있다. 중운위와 전학대회 등 회칙과 관련한 기구가 있는데 이를 담당하는 기구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은 옥상옥이라는 것이다. 박영재 전 공간자치국장은 자치법제위원회 도입 당시에도 회칙 전문 기구가 불필요한 기구라는 우려, 자치법제 위원회가 가지는 위상의 모호함을 비롯한 여러 사정으로 인해 무산됐다고 전했다.

  현재 중앙운영위원들과 총학생회장단의 임기가 마무리되는 시기여서 회칙 개정은 다음 학생사회의 몫이 될 전망이다. 김가영 서울총학생회장은 올해 드러난 회칙의 미비점이 내년엔 반드시 보완되도록 소상한 인수인계의 필요성을 절감한다내년 상반기 전학대회에서 관련 회칙의 개정이 이뤄지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 맹근영 기자 mangr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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