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 한 접시 올리는 걸 깜빡했다야. 생전에 해산물을 겁나게 좋아하셨는디.” “느그 증조할머니는 다른 자식들 와도 너만 방에 데리고 들어가서 노셨어야. 10년 만에 낳은 자식이라고 품에서 떼어놓질 않으셨제.” 상 위에 이것저것 올리면서 당신 시할머니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는 어머니다. “10년 동안 품 안에 손주 못 안겨드렸어도, 눈치 한 번 안 주셨어야. 고생한다. 힘든데 뭣 하러 또 내려왔냐며 반갑다는 타박만 늘어놓곤 하셨지.”

  종갓집이라고, 분기당 한 번 이상 모시는 제사다. 그때마다 집안에 모이는 어른들은 생전 조상님들 이야기를 늘어놓으신다. 떡이다 과일이다 차려 놔도 찾아오시는지 알 수는 없지만, 기억하는 이들이 꺼내는 말 몇 마디 속에서 추모(追慕)의 주인공들은 넌지시 얼굴을 비치신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 제사는 추모보다는 또 다른 사회문제로 고착됐다. 명절이나 시제(時祭) 기간이 되면 각종 뉴스의 단골 소재가 된 지 오래다. 유일신과 조상신 숭배에 관한 신앙 갈등부터 여성 노동, 장남의 부담, 부모와 자식세대 간 반목까지. 다양한 영역과 계층에 산재한 갈등이 제사라는 행위에서 표출되고 있다. 그럴듯해 보이는 겉모습에만 치중해, 누군가의 부담과 노동을 가중시키고 기억의 장이라는 본질을 놓친 탓일 것이다.

  기억에 인색한 시대다. 사람들은 옛 기억보다는 앞으로 닥칠 미래만을 바라보고 산다. 하지만 역사를 구성하는 얽히고설킨 미시사 속에서, 가족사를 지탱해온 이들의 이름과 삶을 추억해줄 이들은 오로지 가족뿐이다.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한다는 점에서 제사의 존재가치는 충분하지만, 현재의 제사는 그 긍정적 기능에서 계속 멀어지고 있다.

  제사의 기원은 숭배의 대상인 자연물이나 조상에게 제물을 바치고 번영을 기원하는 축제(祝祭)라고 한다. 축제가 꼭 성대하고 북적일 필요가 있을까.

  허리 굽혀가며 힘들게 음식 장만하는 문화가 사라지더라도, 잊고 살던 옛이야기 들으며 잠깐 추억에 빠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의 가족사 한 페이지가 한 장 더 채워지는 건 아닐까.

 

전남혁 시사부장 m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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