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벌써 11, 불어오는 찬바람이 시리다. 쓸쓸한 기분을 달래러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찾지만 이조차도 싱겁게 느껴진다. 대신 은은한 감칠맛과 향기로 가득한 중국차는 어떨까.

  차() 문화를 테마로 한 카페 라오상하이(老上海)’는 신촌역 5번 출구에서 그리 멀지 않다. 박주홍(·48) 대표가 2006년에 문을 연 찻집은 차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을 취지로 차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반가이 맞이하고 있다.

  매장에 들어서면 테이블마다 놓인 중국식 다기(茶器)와 매장 한 쪽에 가득 전시된 각양각색 자사호(紫沙壺, 중국 의흥 지방의 진흙으로 빚어진 찻주전자)가 시선을 잡아끈다. 목제 진열장에 놓인 보이차, 우롱차, 백차들은 중국 차 문화의 역사와 다양성을 새삼 짐작하게 만든다.

  차를 마시러 온 라오상하이의 방문객들은 차 음료 대신 소분된 잎차팩을 먼저 구매한다. 테이블마다 놓인 찻주전자에 잎차를 2~3g 정도 넣어두고, 전기포트로 끓인 물을 부은 뒤 잠깐 찻물을 우린다. 대략 10초 정도의 시간 동안 우려진 차는 찻물을 담는 그릇인 숙우(熟盂)에 담아 식혀 마신다.

  다양한 도구로 차를 직접 우리는 과정이 생소하고 번거로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박주홍 대표는 오히려 그 점이 차 문화의 매력이라고 전한다. “차는 그날그날 기분에 맞춰 물의 온도나 찻잎의 양을 달리해 맛을 조절할 수 있어요. 차라는 작품을 완성하는 모든 과정에 관여하는 창작의 즐거움이 있죠.”

  이러니 하나의 맛있는 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느려질 수밖에. 차를 우리는데 들이는 수고가 곧 여유로움이 된다. 한 모금 한 모금을 넘길 때마다 생각은 더 깊어지고 우울함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찻주전자 속에 우려지는 것은 나 자신의 성숙함이고, 잔에 따라지는 것은 한 편의 추억이리라.

  손님들이 모여 찻잔을 사이에 두고 다정한 이야기를 나눈다. 박 대표는 라오상하이가 차를 부담 없이 즐기는 문화교류공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차를 통해 편안히 나를 돌아보고, 심신의 안정을 취할 수 있습니다. 이 공간이 차 문화를 비롯해 중국문화에 관한 관심을 넓혀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이정환 기자 ecrit@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