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 프로듀서들은 복잡한 프로그램을 이용해 직접 비트를 만든다.
반주를 들으며 무대에서 부를 노래를 연습하는 테라 보컬들의 모습이다.

  #. 덜컹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학생회관 5층에 오르면 가장 먼저 들려오는 노랫소리, 테라의 목소리다. 복도 곳곳에서 이어폰을 꽂은 채,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노래하고 음색을 가다듬는다. 어느 한 마디가 유독 잘 안 풀리는지 계속해서 똑같은 마디만 수십 번을 반복하는 부원도 있다. 팀을 이뤄 화음을 맞추기도 하더니, 또랑또랑한 개개의 목소리가 벽돌처럼 더해져 학생회관 전체에 울려 퍼진다.

  본교 유일의 중앙흑인음악동아리, 테라(회장=김석준, TERRA)를 찾았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은 테라가 정기연습을 하는 날이다. 동아리방이 자리한 학생회관 502호는 문을 꼭 닫아도 새어 나오는 노랫소리로 쉼 없이 진동했다. , 보컬, 프로듀싱까지, 127일에 예정된 정기공연을 준비하느라 모두 분주한 모습이었다.

 

좋은 사람들의 실력 넘치는 음악 공간

  랩 팀은 이번 정기공연에 선보일 곡의 가사를 쓰고 열심히 외웠다. 중간평가를 앞두고 있어서다. 테라 래퍼들은 모두 본인이 직접 쓴 가사로 무대에 오른다. 미리 쓴 가사를 노트북에 띄워놓거나 공책에 직접 손으로 쓴 가사를 보고 모두 중얼중얼 암기한다. 가사가 잘 외워지지 않아 얼굴을 찡그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기도 한다. 랩 팀장을 맡은 진영욱(생명대 생명공학18) 씨는 가사를 모두 외웠는지 마이크를 잡고 일어나 신나게 뛰어놀며 연습을 시작했다. “사실 이번이 군대 가기 전 마지막 학기인데 랩 팀장으로서 테라에 쏟는 시간이 많아요. 정기연습 시간이 아니어도 시간이 날 때마다 가사에 담고 싶은 내용이나 단어를 적어두고, 차근차근 곡을 만들어나가죠.”

  프로듀서 팀은 랩 팀과 함께 움직인다. 가사를 외우는 래퍼들 사이에서 복잡한 프로그램을 만지며 비트를 다듬는다. 프로듀서는 매년 힙합정기전에서 주축이 되는 중요한 포지션이다. 프로듀서의 비트를 기반으로 랩과 프로듀싱까지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임무가 중하다. ‘Bonnie’라는 이름으로 작년 힙합정기전에 참여했던 박지윤(문과대 철학15) 씨는 프로듀서의 고충을 터놓았다. “프로듀서는 비트 메이커, 레코딩 프로듀스, 믹싱, 마스터링, 엔지니어의 역할까지 모두 해내야 하는 자리예요. 각자의 개성을 조화해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보컬 팀은 여성·남성 팀으로 나눠, 이번 정기공연에서 부르게 될 곡의 MR을 틀고 화음을 쌓았다. 청아하면서도 힘찬 목소리로 김민서(의과대 의예18) 씨가 남성 팀의 연습을 이끈다. “노래 부르는 걸 평소에 좋아했고, 그중에서도 알앤비(R&B) 장르의 노래를 좋아해서 테라에 들어오게 됐어요. 경험과 실력을 쌓고 있는데, 팀원들과 같이 연습하는 중에도 , 얘네들 진짜 잘한다고 감탄하는 경우가 많아요.” 홍채원(문과대 영문18) 보컬 팀장은 어린 시절의 꿈을 안고 테라에 왔다. “음악을 반대하시던 부모님께서 좋은 대학교에 가면 네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테라에서 적어도 매주 48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랩이든 노래든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연습에 매진하는 모습이 그들의 실력을 입증했다.

  테라는 실력을 중요시한다. 매 학기 초 신입을 모집하는 테라는 유독 선발 기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김석준 회장이 신입 부원 선발에 관해 입을 열었다. “사실 실력 외에 정해진 기준은 따로 없어요. 선발 인원도 딱히 정해두지 않아요.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뽑고 없으면 안 뽑는 것이죠.” 철저히 실력만으로 신입을 뽑다 보니 오디션에 떨어지는 일도 부지기수다. 진영욱 팀장도 탈락의 고배를 마신 적이 있다. “작년 1학기에 지원했는데 떨어졌어요.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했던 터라 탈락의 경험은 자극제가 됐죠. 그다음 학기에는 더 열심히, 철저하게 준비해서 지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테라 부원들이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은 개인의 기량도, 연습도 아닌 사람들이다. “테라를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을 때가 아닐까 싶어요. 좋은 사람들과 공연을 준비하고, 좋은 이야기를 나누며 보냈던 모든 시간들이 제 마음속에는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어요.” 김민서 씨가 말했다. 졸업을 앞둔 OB 박지윤 씨도 정기 활동 당시를 추억했다. “테라에서 좋은 사람들을 이렇게나 많이 만날 줄 몰랐어요. 정이 많이 들었고 같이 음악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겨서 좋아요. 생각해보니까 그때 참 재미있었네요!”

 

2019 힙합정기전, 개봉박두!

  “킬릿코모리, 킬릿코모리, 킬릿코모리!” 본교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곡이다. 2017 힙합정기전 당시 공개된 테라의 ‘KILLITKOMORI’ 영상은 118일 기준으로 유튜브 조회수 513만을 기록하며 테라를 세상에 알렸다.

  힙합정기전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만큼, 테라 내부에서는 출전 래퍼가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다. 매년 1학기 종강 후 테라 동아리방에는 묘한 분위기가 감돌게 된다. 모두의 관심이 그해 정기전에 출전할 래퍼가 누구인지로 집중된다.

  힙합정기전 영상 촬영과 곡 작업에 앞서 먼저 영상에 출연할 래퍼 지원자를 모집하고, 모인 지원자끼리 프로듀서들의 비트를 들어본 후 어떤 프로듀서의 비트에 맞춰 랩을 할지 결정한다. 비트가 결정되면, 지원자들은 정해진 비트에 맞는 작업물과 자유 비트로 만든 작업물 총 두 곡을 만들어 투표에 올린다. 투표는 온라인을 통해 테라 전 기수가 참여한다. 그렇게 정해진 1, 2, 3등의 래퍼들이 정기전 영상에 출연하게 된다. 이번 힙합정기전 래퍼로 선발된 김석준 회장이 겸손하게 소감을 밝혔다. “사실 작년에 한 번 떨어지고 이번에 다시 지원한 거예요. 정기전 영상 출연은 테라 래퍼들의 꿈이죠. 이번엔 운이 좋았어요.”

  이번 주, 연세대 중앙흑인음악동아리 RYU와 여섯 번째 배틀을 치르게 될 힙합 정기전이 ‘Wonderwood’ 유튜브 채널과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올해는 EDM 장르 비트를 처음으로 시도해 봤어요. 훅에서는 벌스를 아예 빼고 멜로디로만 채웠는데 굉장히 좋아요.” 김석준 회장이 힙합정기전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승부가 없는 게임에서 이기는 쪽은 즐기고 있는 자다. 이번에도 우리의 눈과 귀를 앗아갈 힙합정기전, 이번 주 목요일 그들의 승부수를 확인하자.

 

김영현 기자 carol@

사진두경빈 기자 hayabusa@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