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4 16:41 (수)
방송스태프 처우개선, 어디까지 왔을까
방송스태프 처우개선, 어디까지 왔을까
  • 고대신문
  • 승인 2019.11.1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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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임(문화사회연구소 이사)
이종임(문화사회연구소 이사)

 ‘안방극장이란 말은 텔레비전의 대중화로 일상생활 장소인 가정에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감상하고 즐길 수 있게 되면서 등장한 용어다. 과거 정규편성된 시간에만 볼 수 있었던 텔레비전 드라마는 주인공의 삶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등 다양한 감정적 경험을 가능케했다. 지금은 유튜브, 넷플릭스, 푹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드라마를 접하게 되면서 새로운 대중문화현상을 유발하는 등 드라마는 여전히 핫한 콘텐츠다. 최근에는 웹드라마까지 등장하면서 드라마 제작 편수,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는 관련 스태프도 동시에 증가하고 있다.

 특히나 방송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결정짓는데 드라마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주중에 하는 미니시리즈, 주말 드라마, 매일 아침이나 저녁에 방송하는 일일드라마 등 드라마 왕국이라 불릴만큼 우리는 드라마를 즐겨 시청해왔다. 최근에는 관심이 낮아졌지만 매년 연말 방송 시상식에서는 연출자와 작가도 상을 탈만큼 주목받는 편이다. 하지만 그 외에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는 스태프는 크게 주목받지 않았다. 간혹 예능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카메라 감독이나 조명, 조연출 스태프가 유명 연예인과 스포츠 대결을 펼치는 장면에 등장하곤 했다. 유명 연예인과 동등한 관계에서 대결을 펼치는 모습으로도 관심을 유발했고, 동시에 정말 많은 스태프가 한편의 방송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다는 사실도 알게 했다.

 하지만 드라마 제작 현장은 힘들기로 소문난 곳이다. 쪽대본, 생방송에 가까운 촬영과 편집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매번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의 문제로 이러한 사례가 지적되지만, 드라마가 종영되면 잊힌다. 편성시간에 맞춰 편집본을 만들어내는 데에만 집중하는 성과주의 시스템이 지속되면서, 현장에서 장시간 노동으로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스태프의 노동환경은 매번 그냥 지나쳐왔다. 하지만 언제까지 제작 과정보다 결과만을 주목할 수 있을까.

 

카메라 뒤에서 사람이 죽어간다

 지난 2018SBS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에 참여했던 스태프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숨지기 이틀 전까지 76시간 동안 야외에서 일을 했고, 하루에 짧게는 13시간, 길게는 20시간씩 일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하반기 방송되고 있는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역시, 하루 16시간 노동 그리고 촬영장소인 지방으로의 이동시간까지 포함해 하루 21시간의 고강도 촬영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9년 상반기 방송된 SBS 드라마 <빅이슈>는 미완성된 CG가 방송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시청자들의 비난을 샀다. 사고의 원인은 후반작업에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탓이었다.

 ‘카메라 뒤에서 사람이 죽어간다는 말은 드라마 현장에서는 흔한 이야기다. 사전제작드라마가 아닌 몇 편의 시나리오가 나오면 방송사의 편성이 확정되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드라마 제작이 이루어지는 국내 드라마 제작 시스템이 지속되면서 나타난 문제다. 영화나 드라마 제작은 노동이 아닌 예술이라는 생각, ‘창의성과 열정으로 만들어나간다는 신화가 계약문제나 과노동의 문제를 비판할 수 없게, 스태프들의 입을 닫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사전제작 드라마는 다를까? 넷플릭스 방영 예정으로 주목받았던 드라마 <킹덤>은 사전제작드라마다. 하지만 지난 20191월 미술 스태프가 귀가하던 중 사망했고, <킹덤2> 역시 지난 20193월에 소품 담당 스태프가 소품차를 몰고가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언제까지 무방비 상태의 제작 현장에서 만들어진 드라마를 봐야 할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현실비판 드라마, 상상력이 구현된 드라마 등 화면 속 이야기들은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처절하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화면의 이면에는 드라마 제작 스태프들의 부당한 노동착취와 희생이 존재한다. 혹자는 왜 그런 힘든 일을 끝까지 하는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혹은 경력이 짧은 신입들이 오랫동안 일을 하지 못하고 금방 그만둔다며 끈기가 없다고 한다. 일은 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한다는 푸념도 있다. 하지만 기약 없는 기다림, 촬영장소의 잦은 이동이 사전 협의 없이 이루어지고, 장시간 노동 이후 쉴 수 있는 공간조차 없다. 대부분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새벽에 모여 다시 촬영을 하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현장에 과연 젊은 인력들이 계속 버티고 있어야 옳을까.

 

기존 관행 탈피하고 노동환경 개선해야

 드라마 제작 현장의 사망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프리 프로덕션의 준비 기간이 짧고, 체계적인 촬영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방송사는 편성권을, 제작사는 인력운용 결정권을 쥐고 있어 스태프들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구조다. 촬영 일정이 촉박해 함께 모여 논의할 시간도 없다. 또한 계약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노동시간과 쉬는 시간 구분이 없다. 모두가 시간에 쫓기는 상태에서 제작현장에 투입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거기에 드라마를 제작하는 일은 창작작업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공유되면서, ‘나는 노동자가 아니라 예술가, 창작자라는 인식이 스태프 사이에서 지배적이라는 점도 문제다.

 방송사 드라마 스태프로 일하는 노동인력의 고용형태는 대부분 계약직 또는 프리랜서 형태의 비정규직이 주를 이룬다. 방송사와 제작사는 스태프가 다쳐도 책임지지 않는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거나 산업재해 신청을 할 경우 암묵적으로 다음 드라마 제작에서 배제되곤 하기 에 스태프들은 자비로 병원비를 지불한다. 또한 생방송에 가까운 드라마 촬영을 고집하는 것은 광고와 협찬 유치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고나 협찬의 증가는 스태프의 임금 변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지난 2018, 방송스태프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가 결성되었다. 특히 계약서를 통한 책임 주체를 규명하는 것과 장시간 노동을 바꾸기 위한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그동안 드라마 스태프들은 일명 턴키(Turn-key)계약이라 불리는 방식으로 계약하고 일해왔다. 턴키계약은 방송국 혹은 제작사가 제작비를 책정한 뒤 팀별로 용역계약을 맺고 대금을 나눠주는 방식이다. 예를들어 조명팀의 경우 조명팀 팀장이 자신이 이끄는 팀 전원의 인건비·장비 비용 등을 나눠 받은 제작비 안에서 해결한다. 사고가 터지거나 추가 비용이 발생하면 그 책임을 팀장이 떠안아야 한다. 스태프 개개인은 계약서 없이 일을 하고, 구두계약도 빈번하다. 방송국이나 제작사가 책임을 지지 않고 선임 스태프에게 전가하는 인력 운용 구조가 지속되어왔다. 스태프들 역시 개별 계약서가 없다 보니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웠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8년 방송제작노동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제작 현장에서 근무하는 기술 스태프의 경우 2018년 중반까지만 해도 턴키계약 아래 감독(팀장)만이 제작사와 계약서를 작성하고 개인 스태프는 별도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다행히 최근에는 스태프 대상 개별 서면계약 체결 문화가 확산되는 분위기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열악한 드라마 제작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고용노동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련 부처의 의견을 모아 표준계약서가 확정되었고, 2019년 주 52시간 근무제도를 드라마 제작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결국 정부 정책이 실효성을 발휘하려면 방송사와 외주제작사가 고용주로서 제작현장의 문제를 책임지고 관리하려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제작 주체 간의 계약, 즉 편성과 저작권 문제와 더불어 방송사와 외주제작사의 제작방식에 대한 논의도 함께해야 한다. 오래전부터 표준계약서 도입, 합리적인 저작권 분배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법으로 강제되지 않다 보니 현장에서 혜택을 받는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산업육성만큼이나 참여인력의 노동환경 개선의 필요성을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카메라 뒤에서 사람이 죽어간다는 말은 이제 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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