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4 16:41 (수)
내 주변에 자리한 역사의 아픔을 찾아서, 서울시내 가볼만한 다크 투어리즘 코스
내 주변에 자리한 역사의 아픔을 찾아서, 서울시내 가볼만한 다크 투어리즘 코스
  • 김태형 기자
  • 승인 2019.11.11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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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쁜 일상에 멀리 나가지 못하더라도, 서울 시내에서 다크 투어리즘을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와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깃든 서울시 내 다크 투어리즘 코스를 소개한다.

 

#1. 남산 국치의 길

 한국통감관저 터(현 서울유스호스텔 아래)-한국통감부(서울애니메이션센터)-노기신사(리라초교 내 남산원)-경성신사(숭의여대)-한양공원(한양공원 표석)-조선신궁(한양도성 발굴지) 등으로 이어지는 길

 

 

 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 1번 출구로 나와 10분 정도 걷다보면 현 서울유스호스텔 입구가 보인다. 그곳에 한국통감관저 터가 있다. 1910년 대한제국의 총리대신 이완용이 데라우치 통감과 이곳에서 한일합병조약을 체결했다. 이후 통감관저는 1926년 광화문으로 옮길 때까지 이 자리에서 식민지 정책을 펼쳤다. 현재 통감관저 터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한 기억의 터가 마련돼 있다.

 기억의 터를 나와 남산 자락을 따라가면 보이는 리라학교 내 남산원에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 육군을 지휘해 승리로 이끈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를 숭배하려 세운 노기신사가 있다. 일본 이세신궁의 신체(神體) 일부를 가지고 와 만들어진 경성신사 터에 개교한 숭의여대에는, 학교 곳곳에 계단과 참배 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남산 케이블카 탑승장 방향으로 소파길을 따라 올라가면 한양공원(漢陽公園) 비석이 나타난다. 표석에 적힌 글자는 고종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한양공원은 1910년 일본인들을 위해 세워진 공원으로, 공원의 입구에 세워져 있던 비석이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일제가 1918년 일본의 건국신과 천황을 숭배하기 위한 공간인 조선신궁(朝鮮神宮)을 건립하며 한양공원은 문을 닫았다. 서울교육청 과학전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는데, 이곳이 조선신궁으로 올라가는 참배계단의 일부였다. 대중들에겐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엔딩장면으로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지금은 해당 자리에 남산공원이 조성돼있다.

 

#2. 서울 근현대를 한눈에

서울역사박물관-경희궁-돈의문 마을 박물관-경교장으로 이어지는 길

 광화문역 7번 출구에서 KC타워 방향으로 걷다보면 서울역사박물관이 나온다. 조선시대의 수도 한양, 일제강점기의 수도 경성으로 이어지는 근현대 도시로서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전시하고 교육하고 있는 공간이다.

 박물관 뒤쪽으로는 경희궁이 보인다. 경희궁은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탄 후 흥선대원군 때 중건되기 전까지 10대 임금에 걸쳐 이궁(離宮)의 역할을 한 중요한 공간이었지만, 1910년 궁궐터에 일본인을 위한 학교인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며 주요 부분들이 헐려나가 궁궐의 모습을 점차 잃고 방치된 역사가 있다. 2차 세계대전이 격화된 1944, 일제는 내전인 회상전(會祥殿) 자리에 공습에 대비한 대규모 방공호(防空壕)를 건설했고, 현재도 그 모습을 뚜렷이 살펴볼 수 있다.

 이후 돈의문 마을 박물관으로 향한다. 돈의문은 서울 사대문(四大門) 중 서대문으로 알려져 있는데, 도로확장의 명분 아래 일제에 의해 1915년 철거돼 현재까지 사대문 중 유일하게 볼 수 없는 문으로 남았다. 돈의문이 자리하던 공간 일대는 2003돈의문 뉴타운지역으로 선정되면서 기존 건물이 철거될 예정이었으나, 서울시는 근현대 서울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이 지역의 높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고 철거를 취소한 후 마을 전체를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독립운동가의 집, 생활사 전시관 등이 마련돼 있다.

 돈의문 터의 우측에 있는 강북삼성병원 내부에 위치한 경교장은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 후 개인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하던 공간이다. 환국 이후 임시정부 국무회의가 열린 공간이기도 하며, 김구 선생이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서거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경교장 내부 당시의 모습이 복원돼 있으며, 김구 선생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3. 민주화의 시발점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명동성당(6월 항쟁농성)-향린교회(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발기인대회)

 

 

 

 서울 1호선 남영역에서 내리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일어난 남영동 대공분실을 볼 수 있다. 이곳은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영화 <1987>에서도 생생히 재현된 대공분실은 남영역과 철제로 된 벽으로 분리돼 있어, 지하철 승객들조차 가까이 있는 대공분실을 쉽사리 알아차릴 수 없다. 용의주도한 취조 업무를 위한 건물 뒤쪽 쪽문, 그리고 연행자가 눈이 감긴 채 몇 층인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공포 속에 올랐던 나선형 계단 등 치밀한 의도가 보인다. 박종철이 당시 실제로 고문당했던 취조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으며 현재는 경찰청 인권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명동성당과 향린교회도 들려 6월 민주항쟁의 분위기를 느껴보자. 1987114일 박종철이 구타와 물고문을 당하다가 숨진 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고문살인 종식을 위한 우리의 선언>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126, 명동성당에서 박종철 군 추도 및 고문 근절을 위한 인권회복 미사가 열렸다.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시위대는 당시 경찰에 밀리고 밀리다 명동성당으로 들어와 610일부터 15일까지 농성을 이어가기도 했다. 이곳에서의 농성은 곧 전국으로 퍼져 6월 민주항쟁의 시작을 알렸다.

 향린교회는 527호헌철폐,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발기인대회가 열린 곳이다. 향린교회 외부엔 6월 민주항쟁 기념비가 설치돼 있다. 당시 홍근수 목사를 비롯한 향린교회 교인들이 민주화운동에 동참하며 시위대들을 도왔다.

 

김태형 기자 flash@

사진제공김태형, 양가위 기자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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